날이 갈수록 쟁쟁한 잔소리
날이 갈수록 쟁쟁한 잔소리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7.31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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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 병 섭 <충주 용산초등학교 교사>

여름 숲은 싱싱해서 참 좋다. 풋풋한 풀냄새도 그렇거니와 싱그러운 산 냄새가 온몸을 산뜻하게 적시기 때문이다. 자주는 못가고 어쩌다 산을 오르게 되면 금방 어린아이가 되는 느낌이 들어 발걸음이 절로 가벼워진다. 특히 청년시절 고향의 숲속에서 아련히 들려오던 뻐꾸기 소리를 꿈결같이 들으며 깨어나던 행복한 아침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누구나 청년시절 선배들이나 웃어른들께서 들려주신 인상 깊은 한 두 마디 가르침은 오랫동안 기억되리라 여겨진다. 나 또한 당시에는 잔소리로 여겼던 소중한 가르침이 세월이 갈수록 더욱 선명하게 새겨져 가슴 깊이 끌어 앉고 있다.

"여기 이 자리에는 봉급 때문에 근무하시는 선생님은 아무도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만.'

20대 초반의 청년교사인 나에게는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언사였다. 하지만 특별한 일정으로 교육장님, 장학사님, 교장·교감·교무선생님, 심지어 같은 동료 선생님들도 틈만 있으면 이 말씀을 빠뜨리지 않고 언급해 내심 의아해하며 궁금히 여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나만 빼고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은 당연히 보수에 연연하지 않고 오직 불타는 사명감으로 직무에 충실한 사람들인가

"아닌 말로 봉급 안받고 일할 사람이 어디 있으며, 봉급 안주면 이 자리에서 일할 사람이 또 어디 있겠는가"

당시는 급여에 해당되는 봉급을 누런 봉투에 담아서 직접 수령하던 터라 지금의 상여금이나 성과금에 각종 복지수당과 같은 보너스를 온라인 계좌로 자동 이체되는 현실과 비교하면 상상할 수 없는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비록 봉급은 적었지만 뚜렷한 사명감을 되새기며 근무했던 당시의 초심을 빛바랜 흑백사진처럼 되돌아볼 때가 종종 있다.

강산이 몇 번 바뀌어 고속도로가 뚫리고 고층빌딩이 즐비한 요즘에 와서야 선배들이 들려준 그 말의 진의를 거울 보듯 알게 되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봉급 때문에 근무한다는 세속주의를 버리고 사명감을 가지고 교육현장에서 사표가 되라는 간곡한 당부였음을 말이다.

정기 직원협의가 있는 날에는 불현듯 옛 생각이 떠올라 그 자리에서 불쑥 일어나 버젓하게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가 있다.

"여기 이 자리에는 봉급 때문에 근무하는 선생님은 아무도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만."

창밖의 저 숲에서 뻐꾸기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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