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판의 추억과 유리벽 이야기
LP판의 추억과 유리벽 이야기
  • 이현호 충북예총 부회장
  • 승인 2021.12.29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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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이현호 충북예총 부회장
이현호 충북예총 부회장

 

눈이 포근히 내리는 저녁이면 40여 년 전의 긴 머리의 청년이 떠오른다.

70년대 후반 20살 때의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었다. 어둡고 추운 저녁이 되면 친구들과 충주시내의 지하에 있는 음악다방으로 향했다. 이미 다방 안에는 우리 또래의 젊은이들이 많이들 자리 잡고 있었다.

조명이 밝은 실내에는 커피 향과 뿌연 담배 연기 그리고 포근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비엔나커피를 주문하고 긴 머리의 DJ가 있는 유리벽 속을 향해 손을 흔들며 안녕의 인사를 건네본다.

그리고는 흰 종이 위에 듣고 싶은 음악을 몇 곡 적어 유리벽으로 된 갑 속으로 신청곡을 청하곤 했다. 청재킷을 즐겨 입던 DJ 청년은 미소를 지으며 LP판을 찾아 진공관식 앰프 위에 있는 턴테이블에 살포시 얹으며 멋진 멘트를 날린다.

내가 신청한 음악이 소개되면 세상이라도 얻은 듯 기뻐하며 친구들과 잡다한 음악 이야기를 하며 비엔나커피를 마시던 눈 내리는 겨울 저녁의 풍경들이다.

LP란 말은 말 그대로 장시간 음반(Long Play Record)을 의미한다.

LP는 아날로그 음원 저장 장치인 축음기 음반의 표준 중 하나이다. 1948년 컬럼비아 레코드에서 개발한 LP는 한 면에 22분을 녹음할 수 있었고, 음반의 크기는 지름 30㎝로 큰 도넛 모양이다.

근래 들어 레트로 열풍이 불며 거리의 유행하는 옷이 과거처럼 헐렁해지고 바지 단도 쑥 올라갔다.

대중음악도 트로트가 유행하고 더불어 1930년대에 만들어진 만담 같은 노래인 만요가 각종 미디어에 즐겨 나와 웃음을 자아내고 폭소를 더하게 한다.

음악을 듣던 매체도 한동안 보이지 않던 턴테이블 위의 LP 음악이 복고 바람을 타고 동그랗게 맴돌며 귀로 들어온다.

복고 바람이 불며 프랑스의 샹송을 세계적인 음악으로 발전시킨 프랑스 국민 가수, 예술가들이 사랑하는 예술가로 불리는 에디트 피아프의 LP가 발매됐다는 뉴스를 접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사랑의 찬가', `장밋빛 인생', `빠담 빠담' 등 환희와 낭만, 사랑과 상처가 가득한 명곡들이 수록된 LP와 아트북으로 구성됐다는 소식을 듣고 나도 구매하여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친구들과 잠시 들른 무심천변에 있는 어느 찻집에는 오래되고 많은 양의 LP 판들이 사방의 벽들에 가득 쌓여 있었다.

커피를 주문하고 주인분에게 학창시절 즐겨 부르던 노래를 신청해 들으니 옛날의 아날로그 감성이 커피 향과 함께 되살아났다.

소문을 듣고 외지에서 찾아온 어느 젊은 관광객이 비틀스의 음악을 신청하자 깊숙한 곳에서 비틀스의 원판을 조심스레 틀어주었다. 원판의 음질은 생생함이 살아났다.

음악이 끝나자 손님 모두가 일어나 환호와 박수를 치는 모습은 공연장을 방불케 했다.

아! 역시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 감성이 깨끗하다는 것을 느끼던 저녁이었다.

이젠 더 이상 유리벽과 긴 머리 청재킷의 DJ청년은 없지만, LP 음악을 들으며 친구들과 우정을 쌓고, 청춘사업도 하던 그 시절 그 추억이 몹시도 그리운 눈 내리는 저녁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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