線과 面, 섬유 - 사색하다
線과 面, 섬유 - 사색하다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1.12.28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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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선(線)이 면(面)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만나야 한다. 좌우로 혹은 위·아래로 길게 늘어서는 선은 곡선을 이루어 둥글게 회전하거나, 어느 지점에서 꺾이어 처음과 끝이 맞닿아야 비로소 공간을 확보하게 된다.

섬유예술가 송재민의 열 번째 개인전 <섬유-사색하다>(2021년 12월 21~ 26일·청주시 한국공예관 5갤러리)를 보았다. 볼수록 섬세한 그의 작품들을 보며 나는 점과 선, 면으로 이루어지는 세상 모든 물성의 본질에 대해 한결 새삼스러웠다.

올해 텍스타일디자인분야 충청북도 명장, 고용노동부가 인정하는 우수 숙련기술자에 선정된 송 작가는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옛것에서 새로움을 찾는다. 그리고 신화이거나 전설로만 남게 될 수 있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현대를 찾는, 그리하여 지금의 숨결이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작업을 한다. 평면적 형식의 패턴으로부터 입체적인 중첩의 효과로 공간이 주는 단조로움을 다양한 색상과 패턴으로 이야기한다.”

전시도록을 통해 작가가 언급한대로 송재민은 30여 년 동안 참 열심히도 살아오면서 끊임없이 세상과의 대화를 시도한다.

이번 전시회에 선보인 작품들 가운데 <자연Ⅰ>과 <쉼>, <사색하다Ⅰ>, <조화Ⅰ>, <시간들>의 작품들은 대체로 길게 구성되고 설치되었다. 그렇게 길게 이어지는 섬유 예술의 연결을 보면서 나는 송 작가가 세상을 향해 길고 커다란 꿈을 얼마나 오랫동안 키워왔는지 가슴 절절하게 실감할 수 있다.

세상의 눈을 피해 캄캄한 새벽에 등교했던 일, 다른 어떤 일에도 관심을 두지 않고 오로지 학습과 작업에만 몰두해 왔다는 송 작가의 회상은 세상의 `오만과 편견', 그리고 낯 뜨거운 `차별'과 무관하지 않다. 겉으로만 보이는 것들을 그저 겉멋으로만 스치듯 보는 것으로는 송 작가의 작품을 감당할 수 없다.

한국의 전통문양과 전통색을 기반으로 여럿의 날선 평면들의 조화를 이끌어낸 작품 <인연>에는 예로부터 전해진 이야기들의 불안한 전승과 사람들의 아슬아슬하지만 결코 끊어질 수 없는 관계의 이어짐에 대한 간절한 의지가 뚜렷하다.

송재민 작가는 직조와 염색, 날염 등 섬유에 갖가지 기법을 망라하면서 예술혼을 불어넣는데 그 작업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어느 한 땀, 어느 한 순간이라도 간절하지 않은 경우는 없다. 본디 섬유예술이라는 것이 면(面)에 대한 구성을 전제로 하나, 단장과 채색되기 전의 표면은 위·아래와 좌우를 교차하는 씨줄과 날줄의 오랜 교차를 통해 비로소 얻어지는 것이라는 본질이 있다. 그리고 그 본질조차도 더 깊숙한 원형으로 거슬러 오르다보면 자연에서 얻은 씨앗이거나 생명이 생명의 이음을 위해 토해내는 실에서 비롯되는 것이니, <섬유-사색하다>는 명제는 그 자체로 깊은 울림으로 우리를 일깨운다.

2년째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19의 질곡에서 예외인 사람은 지구상에 없다. 송 작가 또한 30년 가까이 지나온 세월의 기억보다 훨씬 힘든 한 해를 보냈다. 그런 세월 속에서 송 작가가 찾은 평화는 선과 선을 끊임없이 연결하는 작업의 세계로 향하는 몰입 덕분이라고 말한다.

선(線)의 형태인 `실'을 위와 아래, 오른쪽과 왼쪽으로 직조하는 손끝에서 면(面)의 형상을 지니는 공간(space)이 만들어 진다. 공간을 만드는 일은 `그것'과 `그곳'에 `사람'을 깃들게 하는 조화로운 힘이다. 그 공간의 위와 아래는 하늘과 땅을 향하는 우주적 세계관이 있고, 왼쪽이거나 오른쪽이거나 편 가르지 않고 길게 이어지는 흐름은 사람과의 연대 혹은 과거에서 미래로 향하는 진화의 뜻이다.

<섬유-사색하다>를 보면서 송재민의 작품을 통해 한 해를 돌아본다. 그간 나는 얼마나 성실한 씨줄과 날줄을 엮었는가. 얼마나 본질에 충실했으며 얼마나 인연을 보듬었는가. 세상에 허투루 볼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겨우 깨달은, 한 해가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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