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숙과 성숙의 기로에서
자숙과 성숙의 기로에서
  • 전영순 문학평론가
  • 승인 2021.12.28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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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전영순 문학평론가
전영순 문학평론가

 

연말과 연시로 분주한 주간, 숙고하는 시간이다. 공동체사회, 생물학적으로 살아있는 나는 “좀 더”를 추구하며 오늘도 열심히 산다. 결과는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하고자 하는 일이 나쁘지 않다면 도전한다. 어쩌면 주어진 일에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그 과정을 즐기고 있는지 모른다. 내 능력껏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만 도전한다. 변변하게 내세울 게 없고, 수북이 쌓인 수료증과 자격증이 그 흔적을 말해 준다. 최근 들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 때가 있고, 실패에는 원인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뒤늦게 페달에 발을 올린다. 걸림돌이 되는 세월의 흔적, 나이와 일터가 나를 주춤거리게 한다.

징글징글 징글벨도, 제야의 종소리도, 반세기 이상 듣고 살았지만 아직도 나는 면접을 보러 다닌다. 다른 지원자들과 외관상 확연히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자리를 버티고 있다. 건강이 허락되고 생각이 살아있는 한 무엇이든 열심히 해야 한다는 지론에서 아직도 그 무엇을 배우며 가르치며 도전한다. 시험이나 면접 볼 때 꼭 합격해야겠다고 다부지게 마음먹던 내가 이제는 젊은이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려고 서서히 내려놓기 연습을 한다.

최근에 다 된 밥, 받아놓은 밥상에 재를 두 번이나 뿌렸다.

일차 서류전형에 합격하고 이차 면접이 있던 날 면접관은 내가 그동안 한 업무에 관해 관심을 보이며 많이 궁금해했다. “이런 일도 하셨네요.”, “작가로 활동하고 계시나요?” 등등 물어봤지만 나는 제출한 서류를 보면 알 일이기에 귀찮은 듯 단답형으로 “네”만 했다. 심지어 어떻게 우리 학교에 지원하게 되었어요?라는 질문에 “왠지 나도 모르게 이 학교가 땡겨서요”라고 말하는 순간, 이건 땡기는 게 아니라 “땡”이구나 생각했다.

다른 대학교 면접이 있는 날 이 학교는 꼭 필요한 사람만 일차에 합격시켜 이차 시범강의와 면접을 본다고 한다. 안 들었으면 모를까, 일차 합격 통보를 받은 후 다음날 이차 시범강의를 위해 밤을 새워 ppt 만들고 면접에 임했다. 시범강의는 심사위원들에게 흡족한 표정으로 무사히 통과했다. 나오려고 준비하는데 4명의 면접관 중 한 명이 서류를 뒤적이며 모 대학교에서 강의했는데 강의 증명서가 사업단으로 발부된 것과 아직도 강의하고 있냐고 물었다. 수업은 아직 진행 중이고 강의 증명서가 사업단에서 발부한 것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았다.

사업단에서 강의 증명서를 발부한 모 대학교는 외국 유학생을 받으려고 준비하는 과정이라 아직 국제교류원이 설립하지 않은 상태다. 수업은 종강했으나 토픽시험에 지원한 학생이 있어 수업을 두 번 더 하기로 약속했기에 아직 진행 중이라고 했다. 정상적인 대학교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라면 있을 수 없는 대답이다. 코로나로 온라인 수업을 했고 다른 대학에 재학 중인 유학생들도 수업을 들었다. 나는 할 얘기가 많았으나 그 모든 것을 생략하고 웃음으로 답했다. 아직 한 군데 면접이 남아있다. 면접을 보러 갈까 말까 망설이는 중이다.

어떤 결과든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이 능사만은 아닌 것 같다. 올해 활동한 일들에 대해 월별로 한 장 한 장 넘겨본다. 진실한 마음만 있으면 통한다고 믿었던 자신, 상대가 된 사람이라면 사람을 알아볼 것이라고 믿었던 자신, 노력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고 믿었던 자신이 얼마나 자만했으며 오만했던가.

실력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언술도 중요하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너는 너무 날 것으로 얘기하는 경우가 있어” 피해를 본다고 조언하는 친구에게 화법을 배우러 가려고 한다. 징글징글 징글벨도, 제야의 종소리도, 반세기 이상 들었는데도 아직 세상 읽기를 모른다. 새해 오기 전에 자만과 오만 내려놓기 연습이라도 단단히 해야겠다. 바깥이 차다. 따뜻한 구석보다 “좀 더”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을 찾고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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