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듭 달을 보내며
매듭 달을 보내며
  • 김순남 수필가
  • 승인 2021.12.27 19: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김순남 수필가
김순남 수필가

 

달력이 달랑 한 장 남았다. 지나간 열한 장은 시간과 함께 이미 사라지고 마지막 달 한 장이 쓸쓸히 올해의 남은 시간을 짚어주고 있다.

올 한 해도 며칠 남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하듯이 말이다. 한 장뿐인 달력을 보노라면 쓸쓸하기도 하고 어찌 보면 홀가분한 느낌이 들기도 하며 아쉬운 마음도 겹쳐진다.

이름도 어여쁘다. 일 년 중 마지막 달을 이르는 우리말이 매듭달이라고 하니 아마도 한해를 잘 마무리 하라는 뜻으로 매듭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까 싶다. 이맘때면 바쁜 중에도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지난 한 해를 돌아보지 않던가. 새해에 소망했던 일들은 잘 이루었는지, 계획했던 일들은 어떻게 진행이 되었는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뭔가 허탈하다. 일 년 열두 달, 그리 적은 날들이 아닌데 흐르는 물처럼 흘려버리지는 않았는지 모르겠다. 다시 지난날들을 곰곰이 돌아보니 우리 가족들에게 많은 일들이 있었던 해이기도 하다. 하루하루 이어지는 삶이 같은 듯하지만, 날마다 크고 작은 일들이 변화무상하지 않던가. 슬픔과 기쁨, 희망과 절망이 나누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 잠재해 있다가 언제고 마주할 수 있는 일들인 것 같다.

이른 봄, 아직 그늘진 곳엔 잔설이 남아있을 때이다. 여린 새 생명을 만날 때 감동이 떠오른다. 얼었던 땅을 헤집고 새싹들이 올라올 때 그 신비로움은 얼마나 큰 감동을 줬던가. 그 경이로움을 보고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새로운 희망도 피어났던 것 같다. 그 희망을 꽃피우기 전에 힘든 일들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네 살 손녀는 지난봄과 여름 사이 다리에 깁스를 하고 두어 달을 보냈다. 활발하게 뛰어노는 것을 즐기는 아이가 한쪽 다리를 다쳤었다. 어린이집에도 못 가고 집에서 친구도 없이 지내던 아이의 시간은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짠하다. 지금은 언제 그랬던가 싶게 잘 나아서 여전히 뛰며 놀기를 좋아한다. 남편도 큰 사고가 아니어서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일들이 있었다.

지난여름 작은 며느리는 부친을 하늘로 보내 드려야만 하는 큰 아픔을 겪었다.

며느리는 아버지를 잃은 슬픈 마음을 애도할 시간도 없이 많이 힘들어하시는 사부인을 챙기느라 여념이 없다. 며느리에게는 지난 한 해가 얼마나 힘겨운 해였을까 가늠조차 어렵다. 사실 며느리를 생각하면 얼른 시간이 흘러 아픈 마음이 조금씩 옅어졌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지난가을 매듭 하나는 지은 듯하다.

그동안 써온 작품들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 세상에 내놓았다. 주위를 보면 보석을 꿰듯 누가 보아도 좋은 글을 쓰는 작가가 많지 않던가. 볼품없는 나의 글을 책으로 내어 누군가 읽어주기를 바라는 일이 민망하여 주저하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본 일이다. 돌이켜보니 그냥 무심히 흘려버린 한 해는 아닌듯하다.

곧 우리 모두는 새로운 한 해를 다시 선물 받게 된다. 새해달력을 보니 간간이 무슨 기념일을 비롯해 특별한 날이라 이름 붙여진 날들이 눈에 띈다. 아무런 표시가 없는 날들도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특별한 날들로 다가올 터이다. 이제 며칠 남지 않은 연말을 잘 보내고 새해에는 모두가 따뜻하고 평안한 가정을 이루는 한 해가 되길 기원해 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