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밭서 멈춘 부동산 정책
표밭서 멈춘 부동산 정책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1.12.26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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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미국의 사상가 헨리 조지는 평생을 토지 공개념 이론을 구축하고 그 실천에 바쳤던 인물이다. 그가 1879년 출판사를 찾지못해 자비를 들여 출간한 `진보와 빈곤'은 지금도 추종하는 일군의 경제학자(조지스트)들이 있을 정도로 고전으로 꼽힌다. 그는 이 책에서 사회에 불평등을 초래한 주범으로 토지 사유제를 꼽았다. 땅의 가치를 증진시키는 주체는 땀흘려 수익을 창출한 노동자들인데 지주가 지대(地代, 임대료)라는 명목으로 과실을 훔쳐간다고 봤다. 공공자산인 토지에 소유권이 매겨진 근원 자체도 부정했다. 애초 무단점거나 폭력, 약탈의 방식으로 땅을 취하고 거래했을 사람들을 지주로 인정해 공공문서에 등재하고 법적 소유권을 보장한 절차를 인정할 수 없었다.

그는 (지주의 땅을 임대한) 노동자의 노예화가 토지 사유제가 다다를 궁극적 종착지라고 주장했다. 노동자가 토지를 이용해 아무리 생산력을 높여도 계속 상승하는 지대를 감당하지 못해 결국 노예 상태가 되고만다는 논리다. 지주와 소작농의 아득한 갑을 관계를 토지개혁이 강행된 20세기 중반까지 목도했던 우리에게도 낯선 주장은 아니다.

헨리 조지는 토지 사유제를 철폐해야 한다고 했지만 지주의 땅을 빼앗아 필요한 노동자에게 돌려주는 토지 재분배 같은 폭력적 해법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그는 조세를 통해 토지 사유제의 모순을 극복하고자 했다. 소유권을 인정하되 지주가 직접 사용(경작)하거나 투자하지 않은 토지를 제외한 나머지 토지에서 발생한 불로소득을 모두 세금으로 거둬 국고로 환수하자는 것이다. 이 토지세만으로도 국가재정 운용에 문제가 없다며 나머지 세금은 모두 폐지하자고 주장했다.

그의 거친 주장을 담은 책은 당시 자산계급의 거센 반발을 불렀지만 전세계에서 100만부 이상이 팔릴 정도로 반향도 컸다.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는 “유럽인들은 기득권이 무너질 것 같아 이 책에 적대적이지만 우리 러시아 국민들의 정의감과는 정확히 부합한다”고 했다. 그는 과격한 이상주의자라는 조롱도 받았지만 150년 전에 `부동산이 불평등의 진원지가 될 것이고 결국 조세를 통해 해결책을 찾을 수밖에 없다'는 예지적 통찰을 했다는 점에서 선구자이다.

대선을 앞두고 부동산 세제가 흔들리고 있다. 선두를 다투는 두 정당이 부동산 감세정책을 놓고 한 목소리를 내는 형국이다. 부동산세 자체에 알레르기를 보이는 국민의힘은 그렇다쳐도 민주당의 돌변은 여러 우려를 낳는다. 민주당은 이재명 후보의 뜻을 좇아 다주택자에게 무겁게 매기기로 한 양도소득세를 한시 유예하고 내년 부과할 종부세와 재산세에 올해 공시가를 적용해 세 부담을 줄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어려움을 겪는 서민과 중산층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그런 세금을 왕창 부과받고 싶은 게 서민들의 솔직한 심정이다.

보유세와 거래세 강화는 부동산 시장의 광풍과 사투를 벌여온 정부의 핵심전략이다. 최근 수도권 집값 상승률이 떨어지며 부동산 시장이 안정세로 가는 것은 이같은 정책의 성과로 풀이된다. 그러나 정부가 수십 차례의 실패와 착오를 딛고 짜낸 이 고육책은 표밭에서 좌초할 지도 모르겠다. 일시적 과세 유예가 부동산 매물들을 시장으로 끌어내기 보다는 정부의 의지만 의심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문가들의 진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헨리 조지는 자신의 사상을 구현하기 위해 정치에도 뛰어 들었다. 지주가 거둬가는 불로소득을 몽땅 세금으로 환수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1866년 뉴욕시장에 노조연대정당 후보로 출마했다가 2등으로 낙선했다. 공화·민주 양당제가 뿌리내린 당시에 미국 최대 도시의 시장선거에서 군소정당 후보가 2등을 한 것은 일대 사건이었다. 그에게 밀려 3등을 한 후보가 나중에 대통령이 된 공화당의 시어도어 루즈벨트였다. 지금 이 나라 대선에서는 고액 부동산 보유자들 세금 깍아주기 경쟁을 하는 두 후보가 굳건한 양강구도를 구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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