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시녀들이라고 했을까
왜 시녀들이라고 했을까
  • 이영숙 시인
  • 승인 2021.12.26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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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엿보기
이영숙 시인
이영숙 시인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그림 <시녀들>을 토의 수업으로 다뤄줄 수 있나요?”

제자의 요청을 받고 그림논술 시간이 돌아왔을 때 이 작품도 함께 다뤘다. 냉장고 한편에 아트 타일 마그넷으로 붙어 있는 이 그림이 평소 궁금했다고 한다. `공주들'을 다룬 그림인가 해서 검색해보니 `시녀들'이라고 나와서 아무리 생각해도 제목이 어울리지 않아 부모님께 여쭸더니 학교 논술 선생님께 물어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4쪽 분량의 활동지를 만들어 그림 속 등장인물이 서 있는 위치를 우선 스케치해보고 그 과정에서 명암을 준 부분과 서 있는 각도를 분석하며 각 인물의 특징을 자세히 관찰하였다. `시녀들'에 나오는 인물은 액자 속 인물까지 총 열한 명이다. 학생들이 토의과정에서 던진 질문은 다양했다.

“마르가리타 공주를 중심으로 그린 것 같아요. 그런데 왜 `시녀들'이라는 제목이 붙었을까요?”

화가는 대부분 자신이 강조하려는 점을 색이나 명암으로 표현하는데 빛이 중앙에 서 있는 공주에게로 몰려 있는 것으로 보아 제목이 이상하다는 것이다. 공주를 중심으로 양쪽에 둘러싼 시녀들이 입은 원피스는 왕족이나 귀족이 입는 고급 의상이고 머리핀도 귀족의 고급 장식이라는 근거이다. 그래서 시녀로 보기보다는 왕족으로 보아야 할 부분이고 만약 오른쪽 난쟁이부인과 그의 딸인 듯한 어린 여아를 시녀들로 본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의견이 나왔다. 그러자 교실 TV 화면을 오래 바라보던 한 학생이 어린 여아의 발을 자세히 보면 생각이 또 달라질 거라고 반론을 제기했다. 평안한 자세로 앉아 있는 개의 등을 발로 꾹 밟는 듯한 부분이 걸리는데 그 개가 공주의 반려견이라면 시녀로서 무례한 행동이고 만약 난쟁이 시녀의 반려견이라면 공주를 보필하는 과정에서 개와 동행은 상식 밖의 행동이라는 것이다. 불꽃 튀는 의견들이 오갈 때 정리해야 할 타임이 되었다.

만약 `시녀들'이라고 고집한다면 `왕족의 시녀 놀이'가 더 어울릴 것 같다. 또 다른 생각은 시녀들이 공주와 친구 놀이를 하느라 귀족 의상으로 갈아입은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시녀의 어린 여아가 왕궁의 반려 견에게 발을 얹고 놀 정도로 왕궁은 인권이 존중된 곳이다. 권위적인 왕궁이라면 난쟁이 부인 같은 시녀를 공주 곁에 두진 않는다. 거울 속에 비친 사람들 모두 공주를 중심으로 둘러있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화가의 시선을 유심히 바라볼 필요가 있다. 화가의 가슴에 새긴 십자가 문양과 공주 뒤에 서 있는 수녀와 수사 인물들을 배치한 것만 보더라도 이 작품 의도는 `신 앞의 평등'이라는 의미로 보면 좋을 것 같다는 결론이다.

작가는 자신의 세계를 문장으로 말하고 화가는 그림으로 표현한다.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작품 의도를 떠나 21세기 초반의 우리 학생들이 `시녀들'을 `신 앞의 평등'으로 감상했다는데 가슴이 따뜻해진다.

모두를 그림 일부로 끌어들이는 힘을 지닌 디에고 벨라스케스, 오늘날 후대의 감상자로 하여 그 제목을 완성하려는 목적으로 무제 상태로 남겼는지도 모른다. 삶의 여백을 대면하고 채워가는 자유도 주체의 자유의지에 달렸다. 이 작품이 여전히 비평가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도 독자가 참여할 수 있는 열린 작품인 까닭이다.

“그런데요. 1656년경 스페인 왕궁에도 반려견이 일상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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