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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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창옥 수필가
  • 승인 2021.12.23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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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창옥 수필가
이창옥 수필가

 

올해도 며칠 남지 않았다. 무엇인가 아쉽고 설렁설렁 살아온 지나버린 하루하루가 후회되는 12월은 그런 달이다. 12월, 마지막 달, 저물어가는 한해, 그리고 마무리라고 중얼거리다가 느닷없는 통증에 멈칫한다. 코로나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통증이 흔들어 깨운다. 어젯밤부터 열이 오르락내리락 으슬으슬 춥다가 식은땀이 흘렀다. 뼈마디마다 욱신거리는 느낌과 통증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어서 밤새 뒤척이며 끙끙 앓았다. 통증은 코로나19 백신접종만 하면 내 몸에 찾아오는 불청객이다.

꼬박 하루 반나절을 통증에 휘둘리고 나서야 통증이 잦아들었다. 아플 때는 아무 일도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더니 통증에서 자유로워지고 나니 그제야 몸이 움직여지고 수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언제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날들이 찾아올지 덩그러니 한 장 남아 엷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12월 달력을 바라보며 올해 마무리는 잘하고 있는지, 꼭 해야 할 일을 빠트린 것은 없는지 더듬어본다.

얼마 전 올해 마무리해야 할 일 중 하나인 텃밭정리를 했다. 코로나시대를 살면서 쉬어家의 텃밭은 우리 부부의 숨통을 틔워주는 산소통 같은 장소였다. 계절 계절을 맞이하고 보내며 때때로 힘에 겨워 숨이 가쁘기도 했었지만 쉬어가의 텃밭이 있어 올 일 년도 견딜 만했다. 앙상해진 마른 고춧대와 가지 나무, 토마토를 뽑아내며 미안한 마음에 고개가 숙여졌다. 그동안 우리 가족 마음과 입을 즐겁게 해준 것들이었다. 무공해 열매를 먹겠다고 병충해에 시달리는 것을 보면서도 약 한번 쳐주지 못하고 그저 바라보며 견뎌내고 이겨내 주기만을 바랐다. 얼마나 지독한 이기심인지 내년에는 천연농약 만드는 법을 배워서라도 나의 지독한 이기심을 덜어 내 보리라.

코로나시대를 살면서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란 희망으로 버텨낸 날들이었다. 1차 예방접종 때는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밤을 새워 간신히 접수를 하고 복권이라도 당첨된 듯 뿌듯해했었다. 되도록 빨리 예방접종을 하면 그만큼 코로나의 두려움에서 한 걸음 멀어지리란 설렘 때문이었다. 2차 예방접종을 하고 난 후에는 극심한 통증에 고통스러워 두 번 다시는 예방접종을 할 수 없을 것 같은 심정이었다. 설렘과 걱정이 두려움과 공포로 바뀌는 시기였다. 그럼에도 3차 접종 안내를 받고 주저 없이 병원을 찾았다. 3차 예방접종도 12월 마무리해야 할 일들 중 하나였고 많은 사람을 접촉해야 하는 직업이니 망설여서는 안 될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설령 극심한 통증과 후유증으로 고생을 또 하더라도 다른 누군가에게 민폐를 끼치는 일은 그보다 더 심한 고통을 스스로 끌어안는 일이 될 테니 말이다.

12월이 저물기 전에 텃밭정리와 집안의 묵은 짐들을 정리하고 코로나 3차 예방접종도 통증 때문에 고생했지만 무사히 마쳤다. 며칠 전에는 양파 망에서 깊은 잠을 자고 있던 원종튤립구근을 쉬어家 수돗가 바위 옆에 심어놓고 왔다. 부디 춥고 긴 겨울을 잘 이겨내리라 믿으며 토닥토닥 흙을 덮어주고 비닐이불을 덮어주고 왔다. 이제 튤립은 땅속에서 깊은 겨울잠을 자고 난 후에 봄이면 새싹을 올리고 예쁜 꽃을 피워 나에게 기쁨을 선물할 것이다. 이제는 내 마음속에 앙금처럼 남아 있는 것들을 마무리할 차례다. 가게를 한다는 이유로 코로나19와 바쁘다는 핑계로 소원했던 벗들에게 12월이 막을 내리기 전에 전화로라도 안부를 물어야겠다. 지금은 모두가 춥고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는 시기이지만 따듯하고 꽃피는 봄날은 반드시 다시 찾아올 테니 조금만 더 견디고 이겨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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