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 코로나 冬至의 꿈
위드 코로나 冬至의 꿈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1.12.2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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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처음처럼'살아가는 것이 이토록 힘겹고 간절한 일인 줄 여태 모르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동지(冬至)입니다.

날카로운 겨울 새벽바람은 웅크린 몸을 할퀴면서 텅 빈 숲을 흔들며 빠르게 지나갑니다. 바람의 시작과 끝은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고, 우리는 세상을 향해 아주 쪼끔 열었던 문을 다시 닫아야 합니다.

동지(冬至)는 한 해 중 밤이 가장 긴 날입니다. 여름 초입의 하지(夏至)부터 계속 짧아지던 낮의 길이는 동지에 이르러 가장 짧아지고, 다시 길어지는 변곡점이 바로 오늘입니다. 태양이 북반구에 비추는 시간의 길이는 동지(冬至)로부터 시작되고 끝나는 셈입니다.

그런 동지(冬至)를 맞으면서도 우리는 끝을 선언할 수 없고, 그러므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처음처럼'을 환호할 수 없는 코로나19의 늪 한가운데 있습니다.

동네 프랜차이즈 죽집에 일찌감치 동지팥죽 사전 주문을 알리는 알림 깃발이 나부끼고 있을 만큼 대개의 우리는 더 이상 팥죽을 스스로 만들지 않습니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동짓날 붉은 팥죽을 쑤어 먹으며 혹시 모를 사악함을 경계했습니다. 팥죽의 붉은 기운을 집안 곳곳에 바르며 액운을 차단했고, 찹쌀로 새알심을 빚어 나이만큼 찾아 먹는 풍습을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팥죽에 담긴 새알심에는 가족의 평화와 안녕과 행운을 기원하는 간절함이 있습니다. 요즘 `대기업의 맛'팥죽은 어찌하는지 모르지만, 동그란 새알심은 원래 하나하나 손으로 빚어야 합니다. 새알심을 더 동그랗고 단단하게 빚기 위해서는 두 손을 모아 비벼야 하는데, 그 모습은 경건하게 기도하는 손을 닮았습니다.

동지(冬至)는 그만큼 절실한 끝이고, 간절한 `처음'의 날입니다. 동짓날 새해 달력을 선물하는 의미 또한 다가오는 세월의 흐름에 대한 질서와 더불어 일상의 위계를 미리 세우라는 새로운 처음의 깨우침이 아닐까 합니다.

동지(冬至)가 지나 낮이 길어지더라도 매서운 겨울 추위는 한동안 기세를 더할 것입니다. 어둠의 길이가 짧아지고 환한 날이 더 늘어난다고 해도 처음의 시작은 그만큼 경계하고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자연의 섭리입니다.

동짓날 겨울바람을 흠뻑 맞은 새벽 산책길에서 돌아와 신영복 선생의 잠언집 <처음처럼>을 다시 꺼내 읽습니다.

거기 `삶'이라고 쓰여 있는 절절한 글씨에 딸린 이런 말이 순간 나를 꼼짝 못하게 합니다.

“`사람'으로 읽어도 좋습니다. 그리고 `삶'으로 읽어도 좋습니다. 사람의 준말이 삶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은 사람과의 만남입니다. 우리가 일생동안 경영하는 일의 70%가 사람과의 일입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나의 삶과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 가는 일입니다.”

`단계적 일상 회복'이라고도 하고 `위드-코로나'라고도 하는 일시적 해방마저도 용납되지 않는 환난의 시절로 허망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죄다 사람 때문입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지 않고 제 울타리 안만 집요하게 지키려는 백신 제국주의는 변종 바이러스에 쩔쩔매고 있고, 처음부터 강조되어 왔던 공공병상 확보는 쓸데없는 나라 곳간 걱정으로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것도 모두 사람이, 사람의 탐욕이 저지른 일입니다.

위드-코로나. 언제까지 우리가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갈 수 없습니다. 아니 어쩌면 바이러스는 몸속 깊은 곳에 스며들어 우리가 느끼지 못할 만큼 영원히 일체화된 채 우리를 체념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단지 코로나 이전의 소소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일에 집착하기보다는 더 깊게 스스로가 사람으로, 모두가 좋은 사람으로 회귀하는 `처음'으로의 성찰. `슬픔을 미리 생각하느라 제 삶을 힘들게 하지 않습니다.`(웬들베리. <야생의 평화>中)

동지(冬至)는 `처음'을 향해 끊임없는 성찰을 시작하는 날. 우리가 사람으로, 좋은 사람으로 거듭나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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