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단상
12월의 단상
  • 박경전 원불교 청주상당교당 교무
  • 승인 2021.12.16 20: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낮은자의 목소리
박경전  원불교 청주상당교당 교무
박경전 원불교 청주상당교당 교무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모두가 수고했다. 모두가 잘 버텼다. 어찌 됐든 버텼으니 잘 버틴 거다. 한 해를 보내는 12월에는 지난 일 년을 돌아보고 참회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올해에는 그러지 말자. 냉철한 참회보다는 따듯한 위로와 격려를 하자. 나를 위로하고 주변을 위로하자. 코로나 세상에서 이제껏 잘 버텨온 나와 주변을 위로하고 격려하자.

세상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시간을 경험하고 있다. 어떠한 질병이 이렇게 오랫동안 감염의 위험을 줄이지 못한 채 여전히 속수무책이었던 적이 있었던가.

이제껏 인류가 스스로 갖고 있던 `오만과 편견'에 대한 우주자연의 응답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인간은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알고 싶어 하고, 그것을 알기 위해 끊임없이 궁구한다. 여기까지는 좋다.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문제는 답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답을 제시하는 것까지도 괜찮다. 진짜 문제는 그것을 정답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정답이라 하고 자신들이 그것을 안다고 생각한다.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을 정말로 100퍼센트 안다는 것이 가능한가?

정답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 무엇도 내가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이다. 시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오직 변하지 않는 것은 `모든 것은 변한다.'라는 명제일 뿐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변하고 있는데 그것에 대한 고정된 답은 단지 유효기간이 설정된 정의일 뿐이기 때문이다.

깨달은 사람들의 기본적인 마인드는 `모른다'이다. `모른다'에는 단호하지만 그 외의 것에는 언제나 여지를 남겨둔다. 전에 했던 말과 지금 하는 말이 모순인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은 깨달은 자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전에 그 말을 했던 본인과 지금 그 말을 하는 본인도 다른 사람(변한 자신)이고 그 문제 역시 전혀 다른 사안으로 변했기 때문에 모순이라 할지라도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깨달은 사람들이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바로 `모른다.'이다. `모른다'는 사실만이 자신이 정말 알고 있는 유일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 내가 주장하는 정의, 내가 따르는 사상 등 어떠한 것도 `절대'는 있을 수 없다. `절대'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은 고정관념이 된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무기가 된다. 누군가를 죽이게 되는 끔찍한 살심이 될 수 있다.

옳다고 생각하는 신념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 옳은 것이 하나라는 생각이 틀린 것이다. 옳은 것은 백 개 관 뚜껑 만개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다.

코로나 상황의 장기화로 이제껏 알고 있던 일상의 상식이 흔들리고 있다. 예전의 생활이 `절대'가 돼서는 안 된다. 이제 코로나에 맞추어진 생활을 받아들여야 한다.

`마스크를 쓰라고 안내하는 점원을 폭행한 손님'이라는 뉴스가 자주 눈에 띄고 있다. 자신만의 `절대'를 내려놓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변화하는 세상을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이다.

12월이다.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나를 위로하고 주변을 위로하자. 수고하였고 잘 버텼다.

원불교를 만드신 소태산 대종사님의 짧은 법문으로 마음을 추스려본다.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모든 학술을 공부하되 쓰는 데에 들어가서는 끊임이 있으나, 마음 작용하는 공부를 하여 놓으면 일분 일각도 끊임이 없이 활용되나니, 그러므로 마음공부는 모든 공부의 근본이 되나니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