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과 보물사이
고물과 보물사이
  • 한기연 수필가
  • 승인 2021.12.16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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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한기연 수필가
한기연 수필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니 온기가 느껴진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따뜻한 차 한 잔 마시러 지인과 들렀다. 평소 커피를 좋아하는지라 처음 생각으로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할 요량이었다. 그런데 유리 진열대 안에 예쁜 병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안에 어떤 음료가 담겨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병이 갖고 싶어서 음료를 주문하고 자리로 돌아와 앉고 보니 헛웃음이 났다.
집 근처 작은 텃밭에는 컨테이너가 하나 있다. 그 안에는 별의별 물건이 들어 있다. 오륙 년은 족히 넘은 것도 있고 언제부터 있었는지 기억에도 없는 물건이 숨어 있기도 하다. 남편 외에는 그 창고 문을 열어 볼 사람이 없지만, 혹여 누가 열어 보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아마 누군가 그 안을 본다면 쓰레기 더미가 무분별하게 쌓여 있는 것으로 보일 게 분명하다. 그러나 그 창고 안 물건은 내겐 보물이다. 정리되지 않은 물건들을 뒤적여 필요한 것을 필요할 때 찾아서 사용한다. 
그 창고에는 남편이 가끔 잔소리처럼 ‘제발 버리라고’하는 물건들이 쌓여 있다. 깨끗하게 씻어서 말린 우유갑, 축제장에서 사용한 모양 예쁜 투명 플라스틱병, 공사현장에서 주워 온 스티로폼 조각, 투명 아이스커피 잔, 아이스팩, 유리병 등 재활용품이다. 몇 년 전 모임에서 서울 나들이 갔을 때 들른 카페에서 컵홀더가 예뻐서 가방에 챙겨 온 것도 보인다. 공예 수업을 하면서 이런 재료들을 잘 활용하기 때문에 내용이 비워진 빈 것에 관심이 많다. 
코로나 2년째인 올해는 다양한 방법으로 수업을 시도했고 그중 하나가 DIY꾸러미 제작이다. 실시간 화상으로 공예 수업을 진행하면서 꾸러미를 만들어서 전달했다. 창고 속 물건 중에 플라스틱병은 제품을 보호하는 도구로 쓰였다. 모아 놓은 것이 이렇게 쓸모 있게 쓰이는 걸 보니 뿌듯했다. 충북 교육문화원 한글 꾸러미를 대량으로 만들면서 일회용기와 비닐 포장을 주문했다. 꾸러미를 구성하면서 불가피하게 사용되는 일회용품과 비닐이 쌓이는 걸 보니 씁쓸했다. 비대면 배달이 늘어나면서 사용되는 것뿐만 아니라 코로나 이전에 시행된 일회용품사용제한 등이 무색할 정도이다.
주변 사람들은 나를 보면 재활용할 것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깨끗이 씻어서 모아 준다. 도시락을 먹고 난 후 빈 용기를 씻어서 주거나, 아이스크림을 먹고 난 후 통을 모아 주기도 한다. 그것들은 일회용이라고 하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튼튼하고, 다시 사용하기에도 손색이 없다. 요즘 회의를 한 후 도시락을 나눠 주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내용이 담긴 그릇 또한 두껍게 잘 만들어져 있다. 칸이 나누어져 있기는 하지만 쓸모 있지 않아서 깨끗하게 씻은 후 분리수거한다. 
지난주, 오전 교육을 마치고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물 한잔을 따라 마시며 목을 축이고 있는데, 옆 자리 선생님께서 ‘요즘 코로나인데 일회용 컵이 아니네’하며 혼잣말을 하셨다. 그러고 보니 거기는 일반컵을 주셨다. 예민한 시기라 그분의 말씀도 일리는 있었다. 환경 보호를 목적으로 시행된 일회용품 사용 금지법은 코로나 감염병으로 인해 법의 강제성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일회용품 사용을 허가할 수는 없다. 감염병 확산의 위험으로 일회용품 사용이 불가피하다면 다른 방법으로 환경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음식을 포장할 때 집에서 담을 그릇을 챙겨 가자는 공익광고처럼 지속적인 홍보도 필요하다.
일회용품이 버려지더라도 환경친화적인 제품을 만들거나, 내용을 비운 후의 쓸모 있는 쓰임까지 표시해 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고 속 물건들이 주인의 손에 의해 고물과 보물 사이로 운명이 바뀐다. 과연 환경은 누구의 손에 쥐어 진 운명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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