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
변명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21.12.14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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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김경순 수필가 

 

12월이 되자 시골 읍내 공원 중앙에는 대형트리가 자리를 잡았다. 어둠이 비처럼 내리는 시간, 세상은 고요하게 기도를 시작한다. 공원의 트리는 그때부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번쩍번쩍, 마치 12월의 쓸쓸함을 위로라도 하듯이. 그렇잖아도 조용한 시골 읍내가 짧아진 해로 더욱더 스산하기만 하다. 코로나 바람은 이 작은 도시에도 날아와 사람과 사람의 관계마저도 얼려버리고 말았다. 누구라도 부지불식간에 맞을 재앙이기에 그 누구도 믿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 위드 코로나가 시작된 지 한 달여, 모임이 재개되고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줄 알았다. 방송을 통해 외국여행을 간다는 소식도 간간이 들려왔다.

대학가도 다시 활기를 되찾는 듯해 보기 좋았다. 태양이 붉은색으로 서쪽 하늘을 물들이는 시간, 나는 그제야 대학으로 글쓰기 강의를 간다. 이상하게도 어둑해질 때면 그리움이 밀려온다. 아마도 그건 석양이 만들어 낸 조화 탓이리라. 지난 학기 대학가는 정말 쓸쓸했다. 강의가 끝나고 건물 밖으로 나와 보면 세상은 어느새 어둠에 잠식되어 버리고, 인공의 불빛이 태양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그리도 북적이던 주점들이었다. 하지만 코로나로 모두가 정지되니, 대학 교정도 상점들도 휑하니 주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요즘은 대학가가 활기를 되찾았다. 규모는 훨씬 축소되었지만 축제도 열렸다. 무엇보다 대학교 앞으로 즐비한 상점들의 불빛들이 생기가 돌았다. 맛 집에는 줄을 서서 기다리는 학생들의 모습도 보였다.

이상했다. 좋으면서도 불안한 건 왜일까. 걱정이 많아진다는 것은 나이 듦의 징후라는데 제발 기우이기를 바랐다. 하지만 기우가 아니었다. 봇물이 터지듯 사람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동안 못했던 놀이도, 먹고 마시지 못했던 음식도 마음껏 즐겼다. 상인들의 얼굴에도 화색이 돌았다. 하지만 하루하루 시간이 갈수록 코로나 확진자의 수가 걷잡을 수 없을 지경으로 늘어났다. 결국 정부에서는 다시 사람들의 거리를 떼어 놓았다.

노스탤지어, 지나간 날들이 이토록 그리울 수가 없다. 어제는 남편과 오랜만에 밤 산책을 나갔다. 어쩌다 나가보면 그래도 사람들이 왕왕 보였는데 오늘은 우리 둘뿐이다. 그래서인지 주위가 더욱 고요했다. 남편은 운동이라 했지만 나는 산책이다. 운동보다는 천변의 밤을 구경하기 바쁘다. 낮에는 훤히 보이는 천변이지만 밤에는 자세히 보아야만 한다. 밤에 듣는 물살도 낮과는 다르다. 그것은 아마도 눈보다 귀가 더 요긴하게 쓰이기 때문일 게다. 물살이 유난히 일렁이는 곳을 따라가 보면 그곳에는 오종종하게 모여 노니는 물오리 떼가 있다. 물도, 돌도, 오리도 검으니 어느새 숨은 그림 찾기로 바빠진다. 어쩌다 물오리를 발견하기라도 하면 어찌나 반가운지 나도 모르게 저만치서 열심히 걷고 있는 남편을 불러 세우곤 했다. 미끄러지듯 헤엄치는 물오리의 모습이 평화롭기만 하다.

코로나로 두려운 건 사람뿐이다. 자연은 조용하고 묵묵하게 지켜왔다. 북적이고, 요란한 건 사람이었다. 그리고 바이러스를 만들고 불러왔다. 그것은 욕망과 욕심 때문이었다. 지금 우리가 느끼는 불안과 고통은 당연한 결과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작고 힘없는 동물들을 원망한다. 바이러스를 옮길까 두려워하면서 말이다.

작은 발소리에도 물오리들은 물살을 가르며 사람들과 거리를 두기 바쁘다. 어쩌면 물오리들은 이미 적당한 거리를 터득했는지 모른다.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도 받지도 않는 거리, 우리 사람만이 그 거리를 지키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이제 와서 그 어떤 변명을 한다 해도 인간이 자연에 끼친 피해를 용서받을 수는 없다. 설사 그렇더라도 우리 일말의 양심을 거름 삼아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조심조심 살아갔으면 좋겠다. 그래야 이우는 저녁놀 앞에서 삶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마음껏 외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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