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말아야 할 것들
잊지 말아야 할 것들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1.12.14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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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사람의 관계에서 가장 악랄한 것은 `무시'가 아닐까 한다. `무시'한다는 것은 존재의 가치조차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그렇게 `그림자'로 남는 것은 죽음보다 지독한 형벌일 것이다.

나는 오늘 전두환에 대해 쓴다.

전두환이 죽은 지 며칠이 지났는지를 따져보는 것조차 `의미'가 전혀 없는 것이어서 칼럼의 시사성 따위는 고려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내가 전두환에 대해서 (글을) 쓰지 않았던 까닭은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을 나름의 `응징'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의지가 아닐 경우 살아있는 동안 세상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얼마나 외롭고 힘든 일인지 코로나19의 질곡을 거치고 있는 지금/여기의 우리는 절실하게 경험하고 있다. 사람들은 대개 욕을 먹거나 다른 사람보다 더 힘든 처지, 혹은 얼마간 부당한 대접을 받는다 해도 사람들 사이에 머무르며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을 다행으로 여기며 살아간다.

살인과 독재를 거침없이 저지르며 세상을 지배했던 세력에게 존재 자체마저 거부하는 `무시'는 나약한 응징에 불과하다.

우리가 기껏 할 수 있는 일은 거기까지였고, 망설이는 사이 전두환은 죽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끝난 것인가. 그리고 전두환의 죽음조차도 `무시'하면서 응징이라고 단정했던 나는 통쾌한가.

몇 날 며칠의 번민은 멈추지 않았고, 어느 늦은 밤 TV 프로그램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를 보면서 나의 `무시'는 외면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옹졸함이 기억의 한계치를 크게 줄어들게 할 수 있음을 깨우치면서 가슴을 두드리고 있다.

권력 찬탈을 위해 (국민의)군대가 시민들에게 총을 쏘는 만행을 벌인 일은 1980년의 일이다. 그리고 내가 TV를 보며 치를 떨었던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사고>는 1999년에 벌여졌다. 지금으로부터 더 가까운 날에 발생한 비극도 까마득한데, 1980년의 일을 기억하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돈 때문에 유치원생 19명과 어른 4명을 포함해 23명이 목숨을 잃은 <씨랜드>와 1980년 <광주>의 비극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1980년 <광주>이거나 1999년<씨랜드>일지라도 시대 상황은 시민의 편이 아니다. 권력은 평범하지만 위대한, 또는 힘이 없으므로 절박한 보통사람에게 결코 너그럽지 않다. 1999년 김대중 대통령 시절이었고, 그 정권에서도 진실은 말끔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며 자본과 야합한 공직사회의 부패는 감시되지 못했다.

다시 말하지만 전두환은 죽었다. 그럼에도 전두환이 죽었다고 결코 끝낼 수 없는 비극은 고스란히 남아 있고, 우리는 전두환의 비극을 옳든 그르든 `역사'에 이름을 남겨 잊게 될 것이다.

전두환은 1980년<광주>에 대해 단 한마디 사과조차 하지 않은 채 죽었다. 그러므로 1980년<광주>는 간절한 현재 진행형이다.

따지고 보면 지금/여기, 우리 시대의 모든 모순은 반성과 사과를 외면함으로써 비롯된 것이고, 그로 인해 비극이 멈추지 않는 `역사'는 거듭되고 있는 것 아닌가.

조선을 찬탈한 일본이 그렇고, 친일파를 처단하거나 단죄하지 못한 반민특위의 와해와 시민을 무수히 학살한 군부독재의 망령이 버젓이 살아 있는 것 또한 반성과 사죄에 단호하지 못했던 `외면'에서 시작된 것이다.

전두환은 죽을 때까지 1980년 <광주>에서의 학살을 정당화한 확신범이다. 그로 인해 진실은 여전히 미궁 속에 갇혀 있으니, 혹여라도 공과를 가리는 시시비비는 온당하지 않다.

그러므로 진실과 화해, 용서 따위는 사치스러운 일이며, 다만 우리가 중단할 수 없는 것은 비극을 끝내 잊지 않고 길이 기억하는 역사를 만들어 가는 일이다.

다시 사람 사이의 관계에 거리를 두는 `닫음'으로 코로나19의 난국이 되돌아가고 있다. 바이러스는 가진 자들이 그들만의 세계에 갇혀 방심한 사이 가난한 세계에 대한 `돌봄'의 절실함을 말하는 듯하다.

마치 해가 바뀐다 해도 전두환이 저지른 비극은 잊을 수 없는 일임을 상기시키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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