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 한 봉지
귤 한 봉지
  • 신미선 수필가
  • 승인 2021.12.13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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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신미선 수필가
신미선 수필가

 

산도 들도 쉬어가는 만연한 겨울 속으로 정신없이 달려온 한 해가 저물고 있다.

현관 입구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색색의 전구를 매달아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해 세워 놓았고 아이들은 달력에 적힌 숫자보다 하루하루 손가락을 꼽아가며 산타할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다.

하루 한 번 오후에 찾아오는 아이들의 간식 시간, 오늘은 귤과 유기농 쿠키가 메뉴다. 천진난만한 얼굴로 웃고 떠들며 참새처럼 재잘재잘인데 이 시간만큼은 제자리에 앉아 조용히 간식을 먹고 있다. 귤 껍질을 까서 입 안으로 넣는 아이들 사이사이로 상큼한 귤 향기가 순식간에 교실을 가득 채운다.

며칠 전 인터넷 기사에 올라온 글 한 편이 지금까지 머릿속에 남아있다. 내용인즉슨 엄마의 생일선물을 사기 위해 귤을 파는 초등학생 형제의 이야기이다.

글쓴이는 집으로 가는 횡단보도 갓길에서 어디선가 “귤 사세요”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어린 초등학생 형제가 귤을 팔고 있더란다. 그 모습이 귀여워 학교 과제냐고 물어보니 엄마 생신 선물 사드릴 거라 답했다며 “형제가 너무 귀엽다. 한동안 이 기억으로 살아갈 것 같다.”라며 글의 끝을 맺었다.

기사를 읽으며 나 역시 아이들의 사랑스러운 아이디어에 박수를 보냈다. 귤을 사 간 이들은 정작 귤 몇 개보다는 순수한 형제의 따뜻한 마음을 샀을 것이다.

사랑하는 엄마에게 줄 생일선물을 준비하기 위해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 얼마나 기특한가. 만일 그때 그 자리에 내가 있었더라면 나 역시 그 아이들 앞으로 다가가 귤을 사고 응원했을 것이다.

더없이 훈훈한 기사를 읽던 날 나는 어렸고 아버지는 한창 젊었던 한 시절을 떠올렸다. 그 시절 아버지는 봄부터 가을까지 농사를 짓고 조금 한가해지는 겨울이 오면 또 일거리를 찾아 읍내 공사장으로 나가 노역을 하셨다.

특별한 기술이 없었던 탓에 근로자들의 심부름을 하며 허드렛일을 하고 당일치기로 일당을 받았는데 그때마다 점방에 들러 귤 한 봉지를 사오던 나의 아버지.

유난히 북풍한설이 잦은 외진 산골 마을에 겨울에만 먹을 수 있는 귀한 과일을 나는 참 많이 먹고 자랐다.

이른 새벽 가장 먼저 일어나 대문을 나서고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들어오시는 그때 아버지의 모습은 늘 고단한 모습이었다.

색이 바랜 낡은 잠바 어깨 위에는 흙먼지가 잔뜩 묻어 있었고 온종일 얇은 목장갑에 의지한 채 고된 노동일을 한 차가운 손등은 거칠고 투박했지만, 귤 한 봉지를 들고 들어오실 땐 늘 웃음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따뜻한 온돌방 아랫목에 앉아 아버지는 늦은 저녁을 드시고 나는 옆에서 귤을 까먹었다.

간혹 귤 하나를 까서 아버지를 드리면 당신께서는 “시어서 싫다. 너나 많이 먹어라.” 하셨던 한마디가 귤이 한창 흔해지는 계절이 오면 문득문득 생각이 난다.

어느 노교수는 부모는 세상을 보고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식을 보고 사는 것이며 가족과 살아가기 위해서라는 본래적 삶의 정신이 바탕이 되어 세상으로 향하는 힘을 얻는다고 했다.

잠시 쉬어도 좋을 농부의 농한기를 거저 흘려보내지 않고 자식을 위해 평생 일을 하신 나의 아버지. 그 덕에 자식들은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 오늘을 살고 있다. 모두가 사랑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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