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논단
충청논단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7.27 23: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탈레반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정 규 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놀이가 있다. 술래가 10음절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읊조리는 사이 나머지 놀이에 참가한 사람들은 살금살금 술래 쪽으로 다가가 때린 뒤 달아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이 놀이는 우리에게 너무도 친숙하다.

이 놀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는 재미를 더하기 위한 한 가지 옵션이 포함돼 있는데, 바로 술래가 10음절을 읊조린 뒤에도 움직이면 술래에게 붙잡혀 꼬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술래에게 붙잡힌 몸들은, 용케 발각되지 않고 술래에게 접근한 동료에 의해 구출되는 스릴이 더해지면서 놀이의 흥미를 배가시킨다.

술래가 돼버린 침략근성에 대한 경계와 소리없이 다가가 '인질'을 구출하는 절대능력의 구원자에 대한 기대의 표현이 내재된 놀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원형은 붙잡히면 다시 술래가 되는 반전과 순환을 거듭하면서 숨죽이며 살아야 했던 이 땅의 민중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수단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

반만 년을 자랑하는 우리 역사에서 우리가 '인질'이 되었던 적은 수없이 많았으나, '인질'을 삼았던 적은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몽고전쟁의 빌미가 됐던 사신 저고여 살해사건을 비롯해 고려말 우왕조에 발생한 명나라 사신 살해사건 등은 나라를 풍전등화의 위기로 몰아넣은 역사적 반면교사이다.

그런가하면 일본에 인질로 잡힌 신라 내물왕의 왕자 마해를 구해내고 순절한 박제상의 부인에 얽힌 망부석의 설화는 통한의 애절함으로 남아 있고, 미완으로 끝난 조선 효종대의 북벌정책으로 인한 전쟁의 위기 역시 그 기저에는 '인질'의 쓰라린 기억이 작용한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에 의해 또 다시 가슴이 절절한 요즘 이런 역사의 흐름에서 착하디착한 백성의 탄식을 듣는다.

철학자 탁석산은 그의 저서 '한국의 민족주의를 말한다'에서 "민족의 이름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고 민족에 도전하는 일은 용납되지 않는 지금의 분위기를 (나는) 의심한다"고 했다. '상상의 공동체'인 민족주의를 해체하고 국민에서 시민으로의 전환과 국가의 백성이 아닌 시민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을 통해 '한국인 인질 1명 살해'와 나머지 22명의 안위가 위태롭기만 한 언론보도에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선교도 좋고 봉사활동도 좋다. 어쩌면 종교적 신념보다도, 또 어쩌면 국가와 민족을 초월하는 인간애의 발로라는 숭고함으로 이해돼야하는 성스러운 여정의 가치는 눈부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온통 눈과 귀가 아프가니스탄과 탈레반에 쏠려있는 국민의 탄식은 어떻게 보상받아야 하며, 반만년을 '착하디착한' 백성으로 살아온 설움은 또 어떻게 달래야 하는가.

병사에게 새끼를 빼앗긴 어미 원숭이의 창자가 끊어질 만큼의 애끓는 고통의 사연이 담긴 단장(斷腸)의 고사성어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그만큼의 고통을 씻어내는 일에는 피아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

이제 사람이 사람을 가두어 두고 목숨을 담보로 흥정을 벌이는 미개한 짓은 마땅히 사라져야 한다.

종교이거나, 민족이거나 국가이건 간에 모두 인간이 만든 '상상의 공동체' 안에서의 허울은 벗어던지고 인간과 생명의 존엄함에 대한 각성을 해야한다.

마침 오늘 7월 27일은 44년째 맞이하는 한국전쟁 휴전일이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낭랑한 어린이들의 운율이 골목너머 온 지구로 퍼지는 것을 기대하듯이 수없이 피었다 지고 피었다 지는 무궁화처럼 청량한 여름이 되기를 '착하디착한' 백성의 이름으로 기원한다.

그리하여 '세상의 모든 껍데기는 가고 알맹이만 살아남아' 순하게 되돌려지기를 거듭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