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머힐 100주년
섬머힐 100주년
  • 양철기(교육심리 박사·원남초 교장)
  • 승인 2021.12.09 20: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심리학으로 보는 세상만사
양 철 기 (교육심리 박사·원남초 교장)
양 철 기 (교육심리 박사·원남초 교장)

1990년 교사 발령을 기다리던 무료한 봄날, 아버지 서재에서 손바닥 만한 책 `니일의 인간교육사상(김은산 역)'을 접했다. 충격이었다. 1921년 니일(A.S. Neill, 1883~1973)이 세운 영국의 섬머힐 학교 이야기였다.

이 섬머힐이 올해로 개교 100주년을 맞이하였다. 섬머힐 스쿨(Summerhill School, 약칭 섬머힐)은 남녀 공학이고 기숙제의 사립학교이다. 이 학교는 수업에 대한 출석도 아동의 자유의지에 맡기고 아동을 자유로운 주체로서 인정하는 자유학교로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현재 설립자 니일의 외손녀가 교장을 맡고 있으며 여전히 니일의 사상과 철학을 가지고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섬머힐의 핵심 가치인 행복, 방종이 아닌 참 자유, 투표권의 평등을 넘어선 심리적 평등, 민주주의, 자치, 수업에 들어가지 않을 자유 등은 지금 우리나라 대안교육과 혁신교육에 심리·철학적 기반을 제공해 주고 있다.



# 섬머힐의 심리학적 배경

니일은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적 입장에서 인간의 행동을 해석하였다. 아동은 선악의 행위를 의지의 힘으로 좌우할 수 있는 이성적 존재가 아니라, 역동적 추진력인 무의식에 의해 그 행위가 좌우된다고 하였다. 프로이드가 무의식의 중요성을 발표하기 이전엔 아동의 마음은 백지와 같아서 어른의 마음먹은 대로 가르침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심리학자 프로이드에 의하면 부모나 교사로 대표되는 사회 도덕적 억압이 개인 내면의 욕구와 충돌하면서 아동의 욕망은 무의식으로 침잠한다. 그래서 섬머힐에서는 `교육'이라는 명분으로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욕구와 욕망을 억압하는데 극렬히 저항했다. 오히려 그 욕구와 욕망이 건강하게 발현될 수 있을 배움과 성장이 일어난다고 보았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수업에 들어오지 않을 권리를 주었고 학교는 기다려 주었다.

섬머힐에서는 학생들의 행동을 도덕적으로 재단하거나 비난하고 처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 학생의 욕구를 왜곡된 방식으로 무의식의 세계에 밀어 넣음으로써 건강하지 않은 언어와 행동으로 드러난다고 보았다. 섬머힐은 권위로부터의 억압이 없는 자유가 보장된 공간을 100년 동안 지켜왔다.



# 考思room에서

1990년 전 전율 속에 읽었던 섬머힐 관련 서적에서 A.S.니일의 정신분석학적 배경을 정확하게 이해진 못했다. 그런데 30여 년이 흘러 필자 자신이 교장이라는 자리에 있으면서 “아하, 섬머힐의 교장이었던 니일도 이러했겠구나”하고 무릎을 치는 일이 생긴다.

교장실을 `考思room(고사룸: 고독히 사유하는 방)'이라 이름 지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공간, 외로운 공간이라서…. 아무리 교장실 문턱을 낮춘다고 했지만 직원들이 들어가기는 부담스러운 공간인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업무상 외엔 1년간 한 번도 찾아오지 않는 교직원도 있다. 그런데 가끔 스스럼없이 교장실 문을 두드리고 들어와 해맑은 모습으로 자기 할 말 다하고 즐겁게 놀다 가는 선생님과 학생들이 있다.

그런 학생들과 선생님들을 만날 때 A.S.니일이 평생을 바친 섬머힐 정신이 오버랩 된다. 권위자이자 어른인(?) 교장 앞에서 주눅들지 않고 자연스러우며 어떤 억압을 느끼지 않는 자유인의 모습을 대하는 것은 큰 기쁨이다. 비인격적 무의식과 초자아와의 갈등이 최소화된, 무의식이 자연스럽게 발현된 아동을 만난 니일처럼.

“인간의 무의식은 선한 것이며 그것은 억압하고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발현될 때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라고 니일은 말했으며 섬머힐에서는 100년간 실천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