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와 은둔의 소요유
풍류와 은둔의 소요유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7.27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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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도사상의 원천이다. 이 사상의 궁극은 자연과의 합일에 있다. 자연은 무욕의 표상인지라 극도로 세태가 혼란하면 예로부터 의인들의 집이 되기에 십상이었다.

유협은 "景物의 변화는 그렇듯 마음도 함께 동요시키게 마련이라며, 정경합일(情景合一)의 중요성을 지적하기도 하였다. 자연과 하나 되려는 자연합일의 동양사상에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는 생각이다.

자연과 자아가 합일되어 타자와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을 때 작품 속에서 자연과의 내적 향수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조지훈은 자유시를 통하여 등단한 후에 주로 한시를 많이 썼다. 한시적 소양을 지니며, 한시에 대한 동경심을 버리지 못하고 그 시적 매력에 심취해 있었던 때문이었다. 그는 도가(道家)적 풍류와 은둔의 소요유(逍遙遊)를 즐겼다할 것이다.

일제 강점기의 많은 시인들은 망국의 혼란한 세태를 피해 탈속의 경지에 들고자 하였다. 탈속의 과정을 통하여 합자연의 경지에 들려한 것이지만, 실상은 침묵을 통한 대사회적인 항거인 셈이었다.

바위는 제자리에

움찍 않노니

푸른 이끼 입음이

자랑스러워라.

아스럼 흔들리는

소소리 바람

고사리 새순이

도르르 날린다.

-조지훈 '山房' 후단-

1941년 월정사에 은거하면서 쓴 시이다. 그는 친일문학단체(朝鮮文人保國會)의 가입을 거부하고 칩거생활에 가까운 생활을 계속한다. 거부의 변에서 추천시 몇 편에 무슨 시인이냐며 문학단체 입회를 거절하고 있으나 친일문학에 대한 거부감에서 연유된 일이다. 조지훈의 역사에 대한 청렴주의가 '山房'으로 은거하게 한 셈이다.

정지용도 금강산 산행 체험에서 해골을 조찰히 다시 지니게 되었으며, 흐르는 물에 쓰러져도 슬프거나 아프지 않을 만큼 산과 화합하고 있다고 하였다. 해골을 번뇌나 죄 따위에서 깨끗하게 하려는 이 씻음 행위는 탈속과 은거의 생활 속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발만 담구어도 영혼이 맑아지는 계곡이 있으니 이 여름은 따름대로 탈속의 계절이다. 숲으로 가서 솔향기에 취해 '도가(道家)적 풍류와 은둔의 소요유(逍遙遊)'를 즐겨보러 가지 않으시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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