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예술학과는 누가 다 없앴을까
그 많던 예술학과는 누가 다 없앴을까
  • 한용진 충북민예총 사무처장
  • 승인 2021.12.07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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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한용진 충북민예총 사무처장
한용진 충북민예총 사무처장

 

“나는 마치 상처 난 몸에 붙일 약초를 찾는 짐승처럼 조급하고도 간절하게 산속을 찾아 헤맸지만 싱아는 한 포기도 없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나는 하늘이 노래질 때까지 헛구역질하느라 그곳과 우리 고향 뒷동산을 헷갈리고 있었다.”

故 박완서 선생의 자전적 소설인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의 한 구절이다. 개풍 박적골에 지천으로 깔렸던 싱아의 풍요로운 새콤함은 서울 문밖 아카시아의 척박한 들척지근함과 대비되었으며, 분단과 이데올로기 전쟁이라는 고난의 역사는 다음과 같은 비장함으로 마무리된다. “우리만 여기 남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약한 우연히 엎치고 덮쳤던가 그래, 나 홀로 보았다면 반드시 그걸 증언할 책무가 있을 것이다. 그거야말로 고약한 우연에 대한 정당한 복수다”

충북지역에 예술대학이 사라진 것은 많은 고약한 우연이 엎치고 덮친 결과이다. 대학 교육과정의 질적 수준을 제고 하기 위한 대학평가인정제도는 조직의 재구조화(restructuring), 과정의 재설계(reengineering), 자원의 재분배(reallocation)라는 구조조정의 전략적 측면으로 접근했다. 재구조화, 재설계, 재분배는 이른바 문사철(문학, 역사, 철학)학과와 예술학과를 사라지게 했다. 각자의 정당성과 당위성을 앞세워 가장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생존방식으로 귀결되었던 분단과 이데올로기 전쟁처럼, 교육 당국과 대학들은 각자의 효율성과 합리성을 앞세워 인문예술대학을 없애버리는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생존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지난 11월 23일 충북지역의 문화예술단체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충북대학교에 예술대학 설치를 요청했다. 약초를 찾는 짐승처럼 조급하고도 간절했다. 젊은 예술인들이 사라지고 우리만 여기 남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약한 우연이 엎치고 덮쳤던가를 증언했으며, 고약한 우연에 대한 정당한 복수를 천명했다.

그리고 충북대학교는 충청북도 광역자치단체의 거점 국립대학으로, 예술에 뜻을 가진 충북의 청년들이 문화예술을 배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모든 사람들이 예술을 창조하고 향유할 수 있는 천부적 기본권이 보장되는 충북을 위해서 이제는 충북대학교가 나서야 할 때임을 비장하게 밝혔다.

충북대학교는 글로벌 국가의 중추 대학으로 미래 100년으로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여느 국립대학과 그 사연이 다르다. 전쟁이 끝난 후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는 도민들의 간절한 염원을 쌀 한 되, 보리 한 되에 모아 그 살림살이를 장만하고, 충청북도가 내어준 개신골에서 성장해온 그 70년의 역사 동안, 충북도민과 함께해온 `충북의 대학'이기 때문이다.

충북대학교 예술대학 설치는 정원증원과 관련하여 매우 어려운 상황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충북대학교 예술대학 설치는 특정 대학의 정원문제나 학과설치를 넘어서는 사안이며, 충북대학교 구성원들 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지역의, 그리고 지역공동체의 문제로 인식해야 할 사안이며, 현실적인 여러 문제 해결을 위해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충북대학교는 충북 기초예술 분야의 새로운 거점으로서, 기초예술 분야와 문화산업을 잇는 문화예술 플랫폼으로서, 지역 문화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지역혁신의 주체로 자리매김하여 명실상부한 거점 국립대학이 되어야 할 것이다.

척박한 들척지근함을 달래주는, 지천으로 깔렸던 싱아의 풍요로운 새콤함은 단지 예술인의 사회적 역할이자, 예술의 사회적 책무만은 아닐 것이다.

그들이 증언하는 엎치고 덮친 `고약한 우연'과 `정당한 복수'앞에 우리의 `충북의 대학'은 스스로 사회적 역할과 책무에 대해 응답할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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