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의 기억
`문자'의 기억
  • 강석범 충북예술고등학교 교감
  • 승인 2021.12.01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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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강석범 충북예술고등학교 교감
강석범 충북예술고등학교 교감

 

이중으로 된 겹 사다리를 끝까지 펴고 올라서야 겨우 핀 조명에 손이 닿는다. “이놈의 전시장은 바퀴 달린 조명 설치대도 없나? 이걸 다 하나씩 언제 맞추지? 오르락내리락 수없이 사다리를 넘나들던 임 작가의 다리가 사다리 위에서 바들바들 떨린다. 밑에서 올려보는 내 목도 마비될 지경이다.

올 하반기 청주시 문화산업진흥재단의 문화도시조성사업 예술창작 부문 공모에 당선되었다. 일주일 정도 머리를 쥐어짰던 것 같다. 주관 공모처의 의도를 적극 살폈다. 밤새 뒤척이며 고민하다, 청주기록문화를 대표하는 `直指(직지)'에서 영감을 얻어 `문자의 기억'이란 주제로 전시 기획서를 작성했다. 정말 운 좋게도 심사위원들이 잘 보아주셨고 덕분에 작가들에게 얼마씩의 부담을 드리지 않고 작품을 보일 수 있어 무엇보다 마음이 편하다.

예부터 인류의 생존에 가장 중요한 건 먹거리였을 테고, 다음으로 집단, 개인 간 소통이었을 것이다. 그 소통의 중심은 말과 글 바로 언어다.

바위와 나무에 새기던 문자는 종이와 인쇄술의 발달로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냈고, 컴퓨터 인터넷의 등장은 그야말로 인류 소통문화를 다시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코로나가 전 세계적으로 대유행하는 Pandemic(팬데믹) 비대면 사회에서 가장 유용한 의사전달 도구는 문자였다.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개인 단말기를 통해 SNS를 활발히 이용하며, 서로 소통의 창구를 적극적으로 만들어냈다.

이에 청주와 서울에서 뜻을 같이하는 20명의 작가가 `문자의 기억'이라는 명제를 걸고 현대적 의미에서 문자의 속성, 그리고 전통으로부터 이어온 문자의 의미를, 자신만의 조형 언어로 선보이며 관객들과 소통을 시도한다. 청주시 한국공예관 전시장에서의 대면 전시는 물론 동영상 유튜브를 통한 비대면 전시까지 그 영역도 넓혔다.

얼핏 도저히 문자와 연결되지 않아 보이는 추상적 이미지 앞에서 관객들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거 뭐로 만든 거야? 문자는 어디 있지?”라며 숨은 그림 찾기에 나서기도 하고, 작품을 유심히 관찰하며 혼잣말로 자신만의 이야기도 만들어간다.

“이거 산인가 봐~ 화산 폭발 같기도 한데?”, “전시장에 웬 뱃놀이에 쓰이는 노가 있어? 혼자 노 젖고 Sailing(세일링) 하라고?”, “여기 마술지팡이도 붙어 있다. `코로나 물러가라~' 마술 한 번 부렸으면 좋겠네”

이처럼 작가들이 제시한 조형 언어는 관객들 각자의 상상에 따라 열 개, 백 개의 소통 도구로 이어진다. 만약 “문자야 어디 있니?” 하고 전시장을 찾는 관객이 있다면 예기치 못한 상황에 발걸음을 돌릴 수도, 또는 상상하지 못한 소통 도구에 홀딱 반할지도 모르겠다.

힘들게 조명작업을 마치고 천천히 전시장을 둘러본다. 참 좋다. 그냥 쓱 보아도 느낌이 좋을 때가 있다. 이번 전시가 그렇다.

“와~ 작품들 좋은데요? 조명작업 끝내니 정말 멋집니다.”사다리를 잡고 서 있던 최 작가의 눈이 동그래진다.

“그러게요. 나부터 공부 더 많이 해야겠습니다. 살가운 작품 내어준 작가님들께 고맙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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