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나무
감나무
  • 김현기 여가문화연구소장·박사
  • 승인 2021.11.21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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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여는 창
김현기 여가문화연구소장·박사
김현기 여가문화연구소장·박사

 

고향으로 돌아오고 `마당 정원 예원(우리 집을 부르는 애칭)'의 세 번째 가을이 지나고 있습니다. 세 번째 해가 되어서야 나름 귀향한 시골살이에 적응하고 가을의 여유와 만납니다.

푸르렀던 마당 잔디가 색을 바꾸어 입습니다. 여름꽃은 대부분 지고 가을꽃이 피어납니다. 층 꽃, 석죽패랭이, 다알리아, 붉은 조팝나무꽃들은 여름을 지나 가을까지도 자태를 뽐냅니다. 특히 들국화로 부르는 감국은 군락을 이뤄 가을의 정취를 더 진하게 보여 줍니다. 하지만 이번 가을에 저를 사유의 세계로 이끈 것은 감나무입니다. 마당 정원 예원에는 세 그루의 감나무가 있습니다. 우리 집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이고 세월의 흔적과 상처가 고스란히 묻어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가을이 되면 나무들은 잎을 떨구어 내립니다. 잔디밭 앞쪽에 감나무가 있어서 떨어지는 감나무 잎은 대부분 잔디밭으로 내려옵니다. 며칠을 치우지 않으면 마당 잔디를 덮어 버립니다. 손수레와 빗자루를 들고 떨어진 감 나뭇잎을 치웁니다. 대략 두 달 정도 감나무 잎 치우기가 반복됩니다.

감나무를 감싸던 나뭇잎이 떨어질 즈음 붉은 감들의 잔치가 시작됩니다. 한해는 많이 한해는 적게 열리지만 매년 빠짐없이 감이 열립니다. 마당 정원 예원의 열매는 모두 새들 차지입니다. 감이 익어 홍시가 되기 시작하면 동네의 새들이 몰려옵니다. 몇 시간씩 짹짹거리며 친구들을 불러 함께 홍시를 쪼아 먹습니다. 이 녀석들은 맛있는 감들을 귀신같이 알아봅니다. 희한하게도 한 나무의 감들을 다 먹어 치우고 그다음 나무로 옮겨 갑니다. 제 생각에는 맛있는 감부터 먹는 것 같습니다.

이제 감나무에는 나뭇잎도 홍시도 하나도 남아있지 않고 나무만 남습니다. 감나무는 이 상태로 겨울을 지냅니다. 제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이 시간의 감나무입니다. 입도 감도 모두 떨구고 제 모습대로 서 있는 감나무입니다. 자세히 보면 감나무의 선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장식물과 거추장스러운 모든 것들을 떨쳐 버린 그 모습이 단순하지만 경이롭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나뭇잎이 사라져야 저수지의 아름다운 풍광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여름내 나뭇잎에 가려 보이지 않던 저수지의 은물결이 벌거벗은 감나무를 지나서 보이게 됩니다. 자신은 사라지지만 주변을 더 환하게 보여 주는 이 새로운 발견이 저를 흥분하게 합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나타나는 감나무의 `원-元 생김의 아름다움'에 놀라고, `자신을 감춰 주변을 보이게 하는 겸손함'에 감동합니다. 마당 정원 예원에 사는 감나무를 보고 저 자신을 돌아봅니다. 교수, 박사, 소장, 대표, 위원장…. 이런 것들이 모두 사라지고 난 내 모습은 그대로 아름다울까? 껍데기가 사라진 내 모습은 그 자체로 경이로울까? 그동안 난 나를 키우느라 주변을 가리고 있던 것은 아닐까?

하느님 앞에 홀로 섰을 때, 보이는 모습 그대로 부끄럽지 않은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껍데기가 아닌 내면이 더 아름다운 성숙한 존재로 살고 싶습니다. 욕심을 거둬내고 칭찬과 인정을 떨쳐내고 당당하게 있는 그대로 아름다운 감나무가 되고 싶습니다. 나를 감추고 가까운 사람들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청년들을 더 빛나게 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당당하게 서 있는 예원의 감나무 아래서 앞으로 살아갈 날에 대한 새로운 가치와 생각을 발견합니다. 가을은 사유의 계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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