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가정·학교 사이에서
법과 가정·학교 사이에서
  • 노동영 변호사·법학박사
  • 승인 2021.11.18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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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영 변호사의 以法傳心
노동영 변호사·법학박사
노동영 변호사·법학박사

 

과거 가정에서 이루어진 가정폭력 및 아동학대, 학교에서 발생한 학교폭력에 대하여는 사생활의 영역이라고 치부되어 법의 개입이 자제되었습니다. 지금은 좋게 말하면 고도로 신장된 권리의식, 나쁘게 말하면 법만능주의로 인해 이 영역들 안으로 법이 아주 깊숙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고 법이 적용되지 않는 곳은 없으므로, 과거 문제가 발생한 가정과 학교에 가급적이면 개입하지 않고자 했던 공권력이 잘했던 것은 아닙니다. 가정과 학교가 사실상 법의 사각지대가 되었고, 피해자는 보호하지 못하고 가해자는 적절히 처벌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가정폭력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아동학대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등의 법은 지속적으로 피해자를 보호하는 다양한 조치를 정하고 가해자를 가중처벌할 수 있도록 개정되어 왔습니다. 가정과 학교의 일이라고 감내하였던 것들이 외부로 표현되고 그 해결을 위해 송사(訟事)가 다반사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제3자의 신고의식이 더해지면서 은밀했던 일들이 표출되어 국민의 공분(公憤)을 일으키고, 문제를 해결하는데 법에 의탁하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 되고 있습니다.

가정과 학교에 법이 잘 개입하지 않던 시대가 이제는 처벌이 강화된 법과 함께 법 앞에 모든 사람과 영역이 평등해지고 있는 시대로 바뀌었는데, 그 이면에는 가정이 파탄나고 있고 전인교육의 장이 되어야 할 학교가 스스로 학교폭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 교육청과 법원에 의존을 해야 하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아이가 자꾸 물건을 훔치니 훈육을 위해 등을 후려치고 종아리를 한두 대 때렸는데, 맞은 아이가 부모를 신고하거나 이웃은 이를 아동학대로 신고합니다. 물론 부모가 마냥 잘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신고가 들어왔으니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수사기관의 입장은 차치하더라도, 아이와 부모는 응급조치 또는 임시조치로 격리되고, 또 기소유예가 가능함에도 부모는 재판을 받고 범죄자가 됩니다. 이럴 경우 부모가 과연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있을까요?

만 10살이 되지 않아 소년법도 적용받지 않는 아이들이 폭행 없이 친구를 자꾸 놀려 결국 교육청의 학교폭력심의에서 사과와 학급교체 처분을 받습니다. 이 역시 가해 아이들이 잘한 것은 아니지만 죽을 죄를 진 것도 아닙니다. `피해 아이의 부모가 문제 삼으니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입장은 문제를 해결하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학년과 학기가 끝나가는데 학급교체라는 중한 처분이 내려지면 아이들끼리의 낙인은 어쩔 것인지, 구체적 타당성을 고려하지 않고 법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데 급급하다면 그 법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국민의 공분을 사는 사안이 있을 때마다 이에 편승하여 처벌을 강화하는 식으로 법을 개정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고 현실을 알고 진지한 고민이 묻어난 따듯한 법이 요구됩니다. 한편으로는 법을 운용하는 사람들이 가해자와 피해자를 고루 생각하는 지혜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변호사·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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