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그냥
  • 이재정 수필가
  • 승인 2021.11.17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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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날씨가 고르다. 바람이 적당한 채 햇살도 알맞게 좋다. 이런 날은 운동보다 산책이 제 맛이다. 청바지에 티셔츠, 그 위에 롱 카디건을 걸치고 나선 길이다. 하늘만큼이나 기분도 구름 한 점 없는 날이다.음성천을 한 시간 걸었는데도 양이 차질 않는다. 잘 닦여진 농로로 들어서 처음으로 걸어본다. 여기저기 논들이 추수를 끝내고 텅 비어간다. 한쪽 논에서는 신기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 논 전체가 볏짚이 공룡알로 뒹군다. 이어 차곡차곡 쌓인 거대한 사탕이 줄로 늘어선다. 그 모습에 혼을 쏙 빼고 지켜보았다. 트랙터처럼 생긴 기계가 볏짚을 삼켜버린다. 삼킨 볏짚을 순식간에 돌돌 말아 원기둥을 만들어 밖으로 토해낸다. 이렇게 만들어진 곤포를 랩핑머신이 마치 음식물을 랩으로 싸듯이 하얀 비닐로 돌려가며 감기 시작한다. 얼마 되지 않아 공룡알이 굴러 나온다. 농민들은 이렇게 부르지만 전문용어로는 사일리지다. 정작 내가 부르는 이름은 마시멜로다. 말이나 소들의 먹이인 사료로 쓰일 귀한 몸이다.제 할 일을 끝낸 기계가 논을 떠나고 있다. 나도 멈추었던 발길을 다시 농로를 따라 옮긴다. 요즘은 시멘트로 포장된 길이라서 흙 한 자락 밟을 일이 없다. 이게 시골의 메말라지는 정서인 것 같아 짠하다. 나의 발자국 소리에 놀란 메뚜기가 튀어 오른다. 개구리가 뛰어오를 때면 내가 더 흠칫 놀란다. 서로 경기(驚氣)를 주거니 받거니 소요음영(逍遙吟詠) 중이다.햇살과 바람, 나를 담는 풍경과 이어폰으로 전해지는 음악. 여러 날을 부대끼던 마음이 고요해지고 평화롭다. 더할 나위 없는 은혜로운 시간이다. 마침 걸려온 아들의 전화는 축복이다. 지금 이런 나의 풍경을 전하고 그의 소소한 일상이 나에게로 온다. 안성맞춤의 전화 한 통이 세상을 통째로 나에게 선물하는 것이다.아들에게 녹음된 듯한 첫마디를 건넨다. “밥 먹었어. 어디야~?”, “학교야”, “휴일인데 쉬지 않고, 무슨 일 있어?”, “아니, 그냥 했어”매번 물어도 같은 대답이다. 그 엄마의 그 아들인 셈이다. 쉰 하고도 중반을 넘긴 여자가 물 만나 수다를 늘어놓는다. 자연 속의 나를 실감 나게 생중계하느라 장황하다. 봄이면 봄대로, 가을이면 가을대로 철철이 나의 호들갑을 묵묵히 들어주는 서른하나의 아들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끊지 않고 철이 덜 든 나의 들뜬 기분을 받아주는 게 고맙다. 가끔 “이런 소녀감성의 우리 엄마가 좋더라” 하고 추임새를 넣어주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베푸는 효도다.“그냥”이라는 말이 묘연하다. 안부가 궁금해서 한 것이 뻔할 터. 그냥 했을 리는 만무다. 이처럼 넓고 멀어서 아득한 말도 드물다. 범위가 커서 어디까지가 한계인지 알지 못하겠다. 평범하게 쓰기 쉽고 특별한 생각 없이 쓰기 좋아서 남발하기 일쑤인 말이다. 무언가 이유는 있지만 말이 마음을 담지 못할 때도 쓰인다. 왜, 무엇이, 어디가라는 토를 단번에 굴복시키기도 한다.또 수천, 수만 개의 의미를 담고 있다. 우연을 가장한 상황을 들켜버리면 얼버무리기 좋은 말. 그리움을 참아내다 더는 참지 못해 한 전화에 어쩐 일이냐는 물음에 다급히 나와 무심하게 들리는 말. `그냥 좋은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 했던가. 무관심이기도 하고 짙은 그리움이기도 한 말, 조건 없이 모두라는 의미로도 쓰이는 말 “그냥”이다. `Oh! 가을가을해' 혼잣말을 해 본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어쩌랴. 물 위의 물 비늘에 내려앉은, 머리 푼 갈대위로 쏟아지는 은빛 햇살이 아까워서 집에 들어가기가 싫다. 이 순간, `왜 행복하냐고 묻거든 그냥 웃지요'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사랑하게 되는 말. 그냥 행복하다. 가을의 기도가 충만해진다. 기도문을 오늘 님에게 바칩니다. 나를 기억하는 그대들도 그냥 행복하소서.
이재정 수필가

 

날씨가 고르다. 바람이 적당한 채 햇살도 알맞게 좋다. 이런 날은 운동보다 산책이 제 맛이다. 청바지에 티셔츠, 그 위에 롱 카디건을 걸치고 나선 길이다. 하늘만큼이나 기분도 구름 한 점 없는 날이다.
음성천을 한 시간 걸었는데도 양이 차질 않는다. 잘 닦여진 농로로 들어서 처음으로 걸어본다. 여기저기 논들이 추수를 끝내고 텅 비어간다. 한쪽 논에서는 신기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 논 전체가 볏짚이 공룡알로 뒹군다. 이어 차곡차곡 쌓인 거대한 사탕이 줄로 늘어선다. 그 모습에 혼을 쏙 빼고 지켜보았다.
트랙터처럼 생긴 기계가 볏짚을 삼켜버린다. 삼킨 볏짚을 순식간에 돌돌 말아 원기둥을 만들어 밖으로 토해낸다. 이렇게 만들어진 곤포를 랩핑머신이 마치 음식물을 랩으로 싸듯이 하얀 비닐로 돌려가며 감기 시작한다. 얼마 되지 않아 공룡알이 굴러 나온다. 농민들은 이렇게 부르지만 전문용어로는 사일리지다. 정작 내가 부르는 이름은 마시멜로다. 말이나 소들의 먹이인 사료로 쓰일 귀한 몸이다.
제 할 일을 끝낸 기계가 논을 떠나고 있다. 나도 멈추었던 발길을 다시 농로를 따라 옮긴다. 요즘은 시멘트로 포장된 길이라서 흙 한 자락 밟을 일이 없다. 이게 시골의 메말라지는 정서인 것 같아 짠하다. 나의 발자국 소리에 놀란 메뚜기가 튀어 오른다. 개구리가 뛰어오를 때면 내가 더 흠칫 놀란다. 서로 경기(驚氣)를 주거니 받거니 소요음영(逍遙吟詠) 중이다.
햇살과 바람, 나를 담는 풍경과 이어폰으로 전해지는 음악. 여러 날을 부대끼던 마음이 고요해지고 평화롭다. 더할 나위 없는 은혜로운 시간이다. 마침 걸려온 아들의 전화는 축복이다. 지금 이런 나의 풍경을 전하고 그의 소소한 일상이 나에게로 온다. 안성맞춤의 전화 한 통이 세상을 통째로 나에게 선물하는 것이다.
아들에게 녹음된 듯한 첫마디를 건넨다.
“밥 먹었어. 어디야~?”, “학교야”, “휴일인데 쉬지 않고, 무슨 일 있어?”, “아니, 그냥 했어”
매번 물어도 같은 대답이다. 그 엄마의 그 아들인 셈이다. 쉰 하고도 중반을 넘긴 여자가 물 만나 수다를 늘어놓는다. 자연 속의 나를 실감 나게 생중계하느라 장황하다. 봄이면 봄대로, 가을이면 가을대로 철철이 나의 호들갑을 묵묵히 들어주는 서른하나의 아들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끊지 않고 철이 덜 든 나의 들뜬 기분을 받아주는 게 고맙다. 가끔 “이런 소녀감성의 우리 엄마가 좋더라” 하고 추임새를 넣어주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베푸는 효도다.
“그냥”이라는 말이 묘연하다. 안부가 궁금해서 한 것이 뻔할 터. 그냥 했을 리는 만무다. 이처럼 넓고 멀어서 아득한 말도 드물다. 범위가 커서 어디까지가 한계인지 알지 못하겠다. 평범하게 쓰기 쉽고 특별한 생각 없이 쓰기 좋아서 남발하기 일쑤인 말이다. 무언가 이유는 있지만 말이 마음을 담지 못할 때도 쓰인다. 왜, 무엇이, 어디가라는 토를 단번에 굴복시키기도 한다.
또 수천, 수만 개의 의미를 담고 있다. 우연을 가장한 상황을 들켜버리면 얼버무리기 좋은 말. 그리움을 참아내다 더는 참지 못해 한 전화에 어쩐 일이냐는 물음에 다급히 나와 무심하게 들리는 말. `그냥 좋은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 했던가. 무관심이기도 하고 짙은 그리움이기도 한 말, 조건 없이 모두라는 의미로도 쓰이는 말 “그냥”이다.
`Oh! 가을가을해' 혼잣말을 해 본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어쩌랴. 물 위의 물 비늘에 내려앉은, 머리 푼 갈대위로 쏟아지는 은빛 햇살이 아까워서 집에 들어가기가 싫다. 이 순간, `왜 행복하냐고 묻거든 그냥 웃지요'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사랑하게 되는 말. 그냥 행복하다. 가을의 기도가 충만해진다. 기도문을 오늘 님에게 바칩니다. 나를 기억하는 그대들도 그냥 행복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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