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를 저었다
노를 저었다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21.11.16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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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가을의 빛은 참으로 오묘하다. 노랗기도 하고 누르스름하기도 하고, 붉기도 하고, 불그스름하기도 하고, 푸르기도 하고, 거무튀튀하기도 하고… 표현하기도 힘든 색들로 가을은 물을 들이고 있는 중이다. 말로 자연의 색을 어찌 다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묘하게도 서로서로 조화가 잘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직 준비가 안 되었으면 어떻고, 예쁘게 물을 들였으면 어떨까. 그저 그렇게 세월의 흐름을 자연은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있다. 그것을 두고 예쁘네, 보기 흉하네 하고 평가하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뿐이다.

가을의 한복판을 걸어 지인과 만났다. 먼 데 산들이 온통 만산홍엽으로 물들어 눈을 즐겁게 했다. 그 때문인지 우리는 달뜬 기분을 주체할 수 없어 수다의 톤이 한 층 높아지고 말았다. 가까운 곳에 동굴이 있다며 나를 이끈 그곳은 충주의 `활옥동굴'이었다.

1922년 일제강점기에 개발된 국내 유일의 활석 광산이라고 했다. 활옥은 다른 말로 `곱돌'이라고도 부르는데 내가 어린 시절, 이 돌을 친구들과 꽤나 많이 가지고 놀았던 기억이 난다. 땅이나 벽에 놀이를 위해 줄을 긋거나, 그림을 그릴 때도 요긴하게 썼던 돌이었다. 폐광이 되어 오랫동안 방치된 이곳을 충주시가 개발하여 관광지로 만들어 놓았다. 동굴 안에는 녹을 잔뜩 뒤집어쓴 권양기가 관광객들에게 자신들의 지나간 영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세월의 무상함은 그 무엇도 비켜가지 못한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말이다.

동굴 온도가 연중 11~15도로 유지된다고 하니 여름 피서지로 이만한데도 없을지 싶다. 한참을 동굴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암반수가 고여 만들어진 호수였다. 이곳을 기점으로 다시 되돌아 나가야 한다. 그곳에서 짧지만 카약을 타고 동굴 내부를 볼 수 있는 체험장이 있었다. 우리도 둘이 탈 수 있는 카약을 타게 되었다.

노를 젓는 사람이 뒤에 타야 한다기에 나이가 어린 내가 뒷자리에 앉았다. 처음에는 제법 잘 나아간다 생각했다. 하지만 방향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양날의 노는 무겁지는 않았지만 처음 저어보아서 그런지 쉽지가 않았다. 결국 우리의 배는 동굴 벽에 부딪혀 오도 가도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할 수 없이 앞자리에 앉은 지인에게 노를 넘겨주었다. 노를 물이 아닌 벽에 대고 힘껏 미니 다시 방향을 잡게 되었다. 앞에서 노를 저으니 물방울이 사정없이 내게 튀었다. 그것도 모른 채 지인은 열심히 노를 젓는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다시 출발점까지 되돌아올 수 있었다. 배에서 내려보니 지인도 나도 옷 여기저기가 물에 젖어 축축했다.

여유롭게 배를 젓는 사람들을 보면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작은 배라고 얕잡아 본 것도 우리가 곤욕을 치른 이유 중의 하나 일 터이다. 그래도 우리는 오늘 서로에게 분명 큰 힘이 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때로는 물이 튀어도, 방향이 엉뚱한 데로 가도 누군가가 지켜주는 사람이 있어 든든함을 채운 하루였다. 가을 산이 서로를 바라보며 물들 듯 우리도 서로를 바라보며 그렇게 물들어 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하루였다.

우리의 삶도 어쩌면 양날의 노를 젓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면 엉뚱한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많은 이들은 지금 우리 사회가 혼동의 악화일로로 치닫는다고 걱정하는 이가 많다. 하지만 작금의 사태도 양날의 노를 젓는 일에 대입해 본다면 그리 걱정할 일도 아니다. 때로는 배가 엉뚱한 방향으로 갈 수도 있고 또 어떤 이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올바른 눈으로 지켜봐 주고, 기다려 준다면 우리 사회도 다시 조화로운 시대로 도래할 수 있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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