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 하은아 충북교육도서관 사서
  • 승인 2021.11.15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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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말하는 행복한 책읽기
하은아 충북교육도서관 사서
하은아 충북교육도서관 사서

 

글 잘 쓰고 말도 잘하던 친구가 있었다. 같은 주제로 글을 써도 그 친구의 글은 달랐다. 문장에 들어간 낱말들이 제자리를 찾아서 빛나는 느낌이었다. 15살 어린 나이에 그 친구의 능력이 부러웠다. 내가 쓴 글은 구태의연하게 느껴졌고, 문장을 만든 낱말들은 힘이 없어 보였다. 나는 내가 너무 부족 해보였다. 상황에 맞게 말도 거침없이 잘하던 그 친구가 부러워 따라도 했다. 그건 내가 아닌 것 같고 더 작게만 느껴졌다.

그런 연유로 글을 더 잘 쓰고 싶어서 나는 책을 꾸준히 읽었을지도 모른다. 책을 읽으면 사용 가능한 단어가 많아진다는 말을 믿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성격이 매우 급하다. 하고 싶은 말을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걸 가만히 주의 깊게 들어야 문맥을 이해할 수 있다. 발음이 불분명해지고 무슨 말을 하는지 앞뒤를 생각하고 있어야 나는 대답을 하고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다. 천천히 말해도 된다고 달래주기도 하고 되묻기도 했었지만 이젠 내가 그냥 찬찬히 들어준다. 남편은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니까.

도서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조던 스콧 글·시드니 스미스 그림· 책읽는곰·2021)은 말에 대해서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꾀꼬리 같은 목소리와 명확하게 들리는 발음, 조리 있는 말솜씨를 동경하는 동시에 어눌하면서 말끝이 불분명하고 느리게 말하는 것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반성하게 되었다.

이 책 속 나오는 아이는 주변의 낱말들이 소리로 아침이 시작된다. 소나무와 까마귀와 달빛의 소리로 목이 꽉 막혀 있다. 말을 해야 할 순간이 오면 아이는 입술이 일그러지고 우물쭈물하게 되고 친구들의 비웃음에 점점 작아진다. 그런 아이에게 아빠는 “너는 강물처럼 말하는 아이야.”라고 말해준다. 굽이치고 물거품 일고 소용돌이치는 강물처럼 말이다.

마음이 따듯해지는 책이다. 나는 그 누구의 말도 느긋하게 들어줄 수 있겠다 싶었다. 달콤하고 만지면 바스러질 것 같은 솜사탕처럼 말하는 우리 딸아이와 어디로 튈지 몰라 뛰어다녀야 하는 농구공처럼 말하는 아들 녀석의 말을 채근하지 않을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모두 아나운서의 발음과 정치인의 언변을 가지고 있지 않다. 대화를 할 때 꼭 수려한 말솜씨와 많은 단어가 필요하지도 않다. 너무 빨리 변화하는 시대에 살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말도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강물처럼 굽이치고 햇빛이 부서지듯 말하는 아이가 있다면, 나는 무엇처럼 말하는 사람일까?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씩 특징을 지어 말해주고 싶다. 단단한 바위처럼 말하는 친구와 깃털처럼 가볍게 말하는 언니와 낙엽처럼 바스락거리는 소리로 말하는 남편이라고.

세상 사람들의 말이 곱게 느껴진다. 들어줄 수 있는 마음의 넓이가 커진다.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라지만, 나는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시끄럽고 아귀다툼 속이었던 세상이 사실은 멋진 하모니를 가진 오케스트라였던 것이다. 오늘도 나는 관객이자 협주 단원으로 하루를 살 것이다. 강물처럼 말하는 아이를 생각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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