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모든 `한나'를 위하여
세상에 모든 `한나'를 위하여
  • 반지아 괴산 청안초 행정실장
  • 승인 2021.11.14 20: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반지아 괴산 청안초 행정실장
반지아 괴산 청안초 행정실장

 

2006년 12월, 무려 608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가 개봉했다. 영화배우 김아중 주연의 `미녀는 괴로워'가 그 주인공이다. 이 영화는 천상의 목소리를 가졌지만 그에 어울리지 않는 외모로 인해 인정받지 못하고 미녀 가수의 립싱크를 할 수밖에 없었던 주인공 한나가 전신 성형으로 미녀가 된 후 벌어지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 대부분의 사람은 한나가 외모로 인해 차별받는 모습에 외모지상주의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우리 사회에 분노했고 그녀가 전신 성형으로 미녀가 되고 난 후 달라진 주변 반응에 통쾌함을 느꼈다. 나 역시 이상하리만큼 그녀에게 감정을 이입하며 영화를 보는 내내 혼자 분노하고, 웃다가 울면서 두 시간의 상영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런데 15년도 더 된 이 영화가 요 며칠 출근길에 불현듯 생각이 났다. 하지만 외모지상주의나 전신성형성공 때문이 아니었다. 영화 초입부의 거대한 체격의 한나가 미녀가수 대신 노래를 불러주며 사회가 원하는 외모가 아니라는 이유로 무대에 설 수 없어 좌절하던 그 모습이 구간 반복이라도 한 듯이 머릿속을 맴돌은 것이다.

어쩌면 우리 주위에도 수많은 한나가 있을지도 모른다. 재능이 있고 능력이 있지만 어떠한 사회적 제약 때문에 앞에 나설 수 없는 사람들. 그것은 경제적 이유가 될 수도 있고 타고난 배경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나의 선택을 가로막는 장애물들. 누군가는 뻥 뚫린 고속도로를 있는 힘껏 달리듯 전진하지만 그에 반해 열 배, 백 배의 노력을 해도 그들의 출발점에 겨우 설 수 있는 누군가가 이 사회에 너무나도 많이 포진되어 있다. 영화는 관객을 위해 희망을 말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남 얘기처럼 쓰고 있지만 필자인 나도, 독자인 당신에게도 어쩌면 한 번쯤은 그런 경험이 있을 수도 있다.

조금 방향을 바꾸어 이제 한나가 아닌 그녀가 립싱크를 해주던 외모는 출중하지만 노래 실력은 형편없었던 미녀가수를 생각해 본다. 우리 곁에 한나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어쩔 수 없이 나의 능력을 남을 위해 쓰고 있을 때 그것을 너무나도 당연한 듯 생각하는 그 `남'은 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악한 사람들일 것 같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렇지도 않다.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이, 혹은 나와 같이 일을 하는 사람이, 더 나아가 나는 알지 못하지만 내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어떤 힘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미녀가수와 같은 사람일 수 있다. 자신이 노력하기 싫어서 혹은 할 줄을 몰라서 누군가는 해주겠지라고 방관하는 사람들이나 혹은 대놓고 그 일을 할 수 있거나 이미 하고 있는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고도 너무도 태연하게 존재하는 사람들.

그래도 다행히 앞에서 말한 한나의 처지와 뒤에서 말한 미녀가수의 이기심을 속수무책으로 견딜 수밖에 없는 누군가를 위해 어쩌면 신이 이 세상에 기적이라는 선물을 내려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성공적인 전신 성형이 한나의 삶에 기적이 된 것처럼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이유에서든 자신의 몫이 아닌 것을 지고 가며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는 이들에게 격려와 위로를 보내며 매우 빨리 그들에게도 남의 몫을 벗어버릴 수 있는 그리고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는 기적이 일어나길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