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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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7.24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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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천봉쇄'와 경찰의 공무집행
한 인 섭 <사회문화체육부장>

음주단속이나 교통단속을 피하려는 운전자들이 경찰관을 차에 매달고 질주해 큰 부상을 입혔다거나 만취자가 지구대 사무실에서 행패를 부리는 장면을 경험한 국민들은 '다소 가혹하더라도 공무집행이 엄정하게 이뤄졌야한다'는 점에 토를 달 수 없을 것 같다. 이런 류의 장면은 TV 화면을 통해 낯익은 모습이 된 탓에 경찰로 상징되는 '공권력'은 종종 동정을 사기도 한다. 이런 예외적 사례도 많지만, 여전히 '공무집행'은 경찰이 '전가의 보도(傳家의 寶刀)'처럼 여기는 영역이라는 점 역시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청주지법 제천지원 형사합의부가 제천농민회 소속 회원들의 상경집회 참석 과정에서 발생한 공무집행 방해혐의 부분을 무죄로 선고한 것은 경찰관의 정당한 직무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선을 명확히 그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번 사건은 경찰이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한·미 FTA 반대 범국민대회'에 참석할 예정이었던 농민회 회원 20여명을 출발지점에서 순찰차와 지프차, 경력을 동원해 원천봉쇄 한 것이 발단이었다. 경찰이 불허된 집회라는 이유로 봉쇄하자 격분한 회원 1명이 순찰차를 발로 걷어찼다. 또 다른 회원은 배수로 뚜껑(주철 성형물)을 집어 들어 지프차 뒷부분을 향해 던져 유리창을 부쉈고, 차량에 탔던 경찰관 1명은 유리에 맞아 찰과상을 입었다는 게 공소사실 요지이다.

일반인 눈에 당시 이 사건은 불법집회에 참석하려던 농민이 경찰차에 배수로 뚜껑까지 던진 과격한 모습이었고, 공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비춰졌다. 경찰은 회원 1명에 대해 특수공무집행 방해치상, 폭력행위등 처벌에관한 법률위반죄를 적용했다. 공용물건손상죄는 2명에게 공통 적용됐다. 하지만 특수공무집행 방해와 폭력 부분에 대한 재판부 판단은 확연히 달랐다. 적법성이 결여된 직무행위를 한 공무원에 대항해 폭행이나 협박을 가했다하더라도 죄가 성립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를 환기시킨 재판부는 이 사건 경찰관의 행위가 적법하지 않았다는 판단을 내렸다. 당시 서울 집회가 금지된 것이었다 하더라도 경찰관의 '범죄예방' 행위는 '목전(目前)에 행해지려할 때'로 한정한 '직무집행법'의 요건을 갖추지 않았다고 봤다. 사건 현장인 제천시 봉양읍과 집회가 예정됐던 서울이 150나 떨어진 점을 고려할 때 경찰의 범죄예방 행위는 법에서 인정할 수 있는 요건과 동떨어졌다는 것이다. 농민회원들의 '상경행위'가 인명과 신체에 위해를 가할 만하고, 긴급을 요했단 것 역시'아니다'는 판단을 내렸다. 차량에 앉아있던 경찰관이 유릿조각에 맞아 상해를 입었다는 사실도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재판부는 공용물건 훼손 부분은 유죄로 인정했다. 결국 재판부는 집회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기본권이라는 사실과 함께 금지된 집회여서 막을 필요가 있다하더라도 원거리에서 가해진 이른바 '원천봉쇄'는 적법한 공권력 행사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특정인이 절도를 목적으로 집을 나섰다는 사실을 경찰관이 알았다 하더라도 대문 앞부터 막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는 취지인 셈이다. 아직 상급심의 판단이 남아있긴 하지만, 이번 판결은 원거리 집회 참석자에 대한 원천봉쇄가 적법한 공무집행인지 여부를 가린 최초의 형사 재판이었다는 의미와 함께 경찰에게는 새로운 과제가 제시됐다 할 수 있다.

경찰은 이 사건에서 처럼 농민회나 노동계의 대규모 집회나 고위 인사 방문 현장으로 향하려는 집회 참석자들을 물리적으로 막았던 관행에 일대 '메스'를 가해야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적법성이 결여된 행위를 한 공무원에 대항해 폭행이나 협박을 가했다 하더라도 공무집행방해죄는 성립할 수 없다는 점도 새삼 환기시켰다는 점에서 경찰의 세련된 대응책이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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