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카페
느티카페
  • 김경수 시조시인
  • 승인 2021.11.08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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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경수 시조시인
김경수 시조시인

 

어느 날 박 노인의 고함소리가 온 동네를 쩌렁쩌렁 울리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어느 시설업체에서 느티나무를 베러 온 것 때문이었다. 그 일로 느티나무를 가로막고 나선 박 노인과 그들 사이에 밀고 당기는 싸움이 커져가고 조금 지나 어디선가 노인들이 하나둘씩 나타나 느티나무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담장 너머로 소리는 소리를 이어가고 귀는 귀를 타고 입으로 전해져 갔다. 얼마 후 동네 사람들이 느티나무 앞으로 모여들고 느티나무 앞은 돌연 시위 광장을 방불케 했다. 생각해 보면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아주 짐작 못 한 것은 아니었다. 얼마 전 어떤 사람들이 느티나무 주변을 돌며 무언가를 조사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의 그 광경을 보고 의아하고 궁금하기도 했지만 노인들이 괜한 일에 참견을 하는 것 같아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설마 느티나무를 베러 올 줄은 꿈에도 상상을 못했던 일이었다. 이 느티나무가 다른 이들에게는 어찌 보일지 몰라도 그들에게는 보금자리와 같은 포근한 휴식처이자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그 언제부터인지 동네 어귀 골목길 입구에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그리고 그곳으로 더위를 피하거나 이야기를 나누며 휴식을 즐기는 노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불편한 몸으로 갈 곳 없는 노인들에게 이만한 곳도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바로 옆에 구멍가게 하나가 든든하게 그들의 목마름과 허기를 달래 주었다. 그런 연유로 동네 사람들은 그곳을 느티카페라고 불렀다. 그래서 느티나무를 잃는다는 것은 그들의 소중한 시간을 함께할 터전을 잃는 것과도 같은 의미로 느껴지는 듯했다. 해가 중천으로 치닫자 더 이상 망설일 수만 없었던 그들은 일단 작업할 의사를 뒤로하고 한 발 후퇴를 했다. 그들이 물러가는 것을 보고 박 노인과 노인들은 마치 노병은 살아있는 듯 대승이라도 거둔 역전의 용사처럼 느티나무 아래에서 자축하는 잔치라도 벌이는 듯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무렵 누군가 느티카페에 문을 두드렸다. 작업자 대표였다. 그는 느티나무 전부를 베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작업할 수 있을 만큼 최소한 양보를 해 달라는 것이었다. 노인들은 고집만 부릴 수가 없어 못 이기는 척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아침 톱날이 굉음을 내며 느티나무 가지를 절단하고 있었다. 그동안 그 속에서 아늑하게 지내오던 기억들이 그리움으로 멀어져 갔다. 그래도 밑동이 잘리지 않은 것만으로 얼마나 천만 다행스러운 일인지 그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한해가 가고 또 한해가 가면 느티나무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리라는 생각에 허전한 섭섭함을 위로하며 돌아설 무렵 어느새 느티카페에도 가을이 찾아와 낙엽이 어깨를 쳤다.

우리에게 터전은 어느 곳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고 본다. 그것은 상대적 상황에 따라 시간과 공간이 다양하게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구에게는 놀이터, 누구에게는 일터, 누구에게는 쉼터와 같은 공간이 그 시간 속에서 터전으로 요구될 것이다. 터전이란 삶 속에서 경우에 따라 달리 갖는 공간이라는 이유에서다. 그 누구도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누구에게는 그 공간의 가치가 미미하게 보일지 몰라도 누구에게는 커다란 의미를 부여시키는 이야기로 비춰질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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