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모성
여성, 모성
  •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 승인 2021.11.07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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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내가 요즘 자꾸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우리 엄마 때문이다.

엄마는 2년 전 뇌출혈로 쓰러지고 오른쪽 편마비가 온 후, 투석이라는 힘든 싸움의 여정의 길에 들어섰다.

지난날 고난과 역경 속에 도전과 응전의 전업주부로 살아온 모습을 난 지켜보았다. 그렇기에 여성과 모성에 대한 삐뚤어지고 발칙한 상상을 자꾸만 한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해방타운'이란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빅마마`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요리연구가 이혜정씨 편이었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면서 치욕스러웠던 경험은 뭐 허다한 며느리가 겪는 거라 그렇다 친다. 요리를 주업으로 삼아 일을 할 때도 자신의 본업은 항상 주부라고 생각했다 한다. 아무리 멀리서 강의가 있어도 반드시 잠은 집에서 잤다. 예를 들어 오늘 부산, 내일 강릉의 스케줄이 있어도 부산에서 서울 집으로 돌아와 새벽에 아침밥을 해놓고 강릉으로 강의를 갔다고 하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심지어 남편이 잘 먹는다고 겉절이를 매일 아침 했다고 한다. 이런 여성이니 자녀 양육은 안 봐도 짐작된다. 여성이 결혼하고 엄마가 되면 사회는 모성을 요구하고 이제는 모성으로 사는 여성에게 왜 당당한 인간으로, 한 여성으로 살지 못하냐고 윽박지르는 것 같다.

내 엄마도 비슷하게 살았다. 직장을 다니진 않았지만 계절이 변하는 것처럼 집안의 모든 것은 소리 없이 언제나 정갈하고 먼지 하나도 검열을 받을 만큼 정확하게 흘러갔다.

엄마의 희생은 가족의 일상에 기본 값일 뿐이지 보상을 받아야 하는 것으로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보상을 바라고 한 것은 아닐 것이다.

경혜원 작가가 쓰고 그린 `나는 사자'라는 그림책을 읽으며 일순간 뭉클해지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어쩜 이리도 인간 모성과 닮았는지. `모성'이라는 두 음절처럼 우리 암컷들의 삶은 깊고 단조로웠다. 거친 야생에서 새끼를 낳아 무리 속에서 보호하며 사냥하는 법을 가르치고 암사자들의 연대는 흡사 인간 여성들의 연대만큼이나 진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틸다 스윈튼이 출연한 영화 `케빈에 대하여'는 많은 여운을 준다. 여행 작가이자 자유로운 영혼 에바는 원치 않는 임신과 출산으로 준비되지 않은 채로 엄마가 된다. 아들 케빈의 탄생은 화려했던 경력의 종말 선언이었다. 한 남자의 아내와 엄마라는 역할은 에바에겐 낯설고 맞지 않은 옷과 같았다. 사랑에 굶주린 케빈은 엄마의 관심을 얻기 위해 동생을 괴롭히고, 잔인한 말썽을 부리고 청소년임에도 어린아이의 옷을 입으며 엄마를 끊임없이 도발한다. 하지만 에바는 여성의 영혼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모성 스위치를 찾지 못하고 그저 케빈을 생물학적으로만 대한다. 그녀에겐 모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을 어떤 위로나 격려도 없었다. 영화 마지막까지 에바는 아들 케빈이 왜 그런 학살극을 벌였는지 명확히 모른다.

모든 여성에게 모성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안 될 것이다. 어쩌면 모성은 사회가 희생을 담보로 만들어 위대하게 보이도록 한 구조적인 카르텔일지도 모른다. 새삼스레 모든 것이 복잡하고 얽혀 있다.

엄마의 모성이 조금만 덜 깊었더라도 가족에게 치여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씁쓸하고 외롭고 할 수만 있다면 엄마의 생을 통째로 돌려주고 싶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니 이제 내가 엄마의 엄마가 되어 엄마 생을 조금이라도 보상해 드리고 싶다. 엄마가 나를 그렇게 깊이 사랑하고 희생했던 것처럼. 비슷하게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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