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묶어두는 대화
마음을 묶어두는 대화
  •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 승인 2021.11.04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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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그릇에 담긴 우리 이야기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분명 우리는 배운다. 말하기, 듣기, 쓰기를 초등학교에서 기초교육으로 배운다. 그 결과 우리나라 문맹률은 0%에 가깝다고 한다. 그렇다고 일상 언어의 활용도인 실질적 문맹률, 문해력 등도 낮은 것은 아니다. 제때 획득하지 못한 독해력과 상호와 간판 그리고 방송에서 남발하며 사용하는 외래어, 뜻을 알아야 이해가 되는 한자어, 어려운 전문용어로 된 설명서, 세대별로 다르게 쓰이는 약어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이해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고 한다.

배움과 적용의 괴리가 나타나는 분야는 또 있다. 서로 말은 하고 있는데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대화에서도 나타난다. 말하기와 듣기는 배웠으나 적절한 질문과 경청이 결여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라 보는 게 지배적이다. 이 어렵고 무거운 주제를 경쾌하고 사랑스럽고 가슴 따듯하게 풀어낸 그림책이 있다. `아빠, 나한테 물어봐'<버나드 와버 글, 이수지 그림?옮김>는 제목에서 보듯 딸아이와 아빠의 대화 내용을 다룬 그림책이다.

아이는 다짜고짜 `아빠,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물어봐.'한다. 이에 아빠는 두말 않고 `넌 뭘 좋아하니?'라며 응수한다. `나는 기러기가 좋아.'라는 대답에 아빠는 단순 호응이 아니라 `하늘을 나는 기러기? 아니면 물에 떠 있는 기러기?'라며 좀 더 구체적인 질문을 한 번 더 해 준다. 이게 뭐 별스러운 질문이냐고 할 수 있다. 허나 아빠는 온 마음을 다해 딸아이의 말을 들었기에, 하늘을 나는 기러기뿐 아니라 물에 떠있는 기러기도 있을 수 있음을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준 질문이다.

아이가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또 물어봐.'하면 아빠는 여전히 `네가 좋아하는 게 또 뭐야?'한다. `나는 벌레가 좋아./곤충 말이야?/아니 벌레. 반짝벌레도 좋아./반딧불이?/아니, 반짝벌레.'라며 대화는 이어진다. 아빠는 상위 개념어로 다시 확인 질문을 한다. 그래도 아이는 자신이 만들어낸 단어를 고집한다. 이때 아빠가 과학적인 지식의 잣대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에 방점을 두고 `아니야. 틀렸어.'라고 심판자의 말을 한다면, 아이는 `틀렸다'는 것에 의기소침해져 아마도 질문을 더 이상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들은 안 듣는 것 같아도 다 듣는다. 그리고 기억 장소에 저장도 해 둔다. 어떤 것이 현명한 대화의 방식인지 생각해 볼 대목이다.

아이는 `아빠, 이제부터는 왜냐고 한번 물어봐.'라며 질문의 패턴을 바꿔 보길 제안한다. `새는 왜 둥지를 만드는 거냐고 물어봐./알았어. 새는 왜 둥지를 만들까?'라는 아빠의 질문에 아이는 맹랑하게도 `아빠가 말해 봐.'라고 한다. 역시 아빠는 정답으로 알려준다. 아이는 `나도 알아.'한다. `그런데 왜 물어봤어?/아빠한테 듣고 싶어서.' 바로 이거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온 마음을 담아 지금 여기에서 나의 이야기에 경청해 주며 그 시간만큼은 올곧게 나와 놀아주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래야 만족감을 충분히 획득, 다음 단계로 향한 성장의 발판이 되기 때문이다.

질문은 또 다른 이름의 지혜이며, 경청은 두 귀로 상대방을 설득시키는 방법이라는 말이 있다. 누구든 수긍할 수 있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에 여기저기 회자하는 말이다. 질문과 경청이 있는 대화를 위해서는 전제 조건이 있다. 대화 중에는 다음 할 일, 어제 있었던 일이 아닌 `지금, 여기'에 마음을 두고 말하는 이의 의도, 듣고 있는 나의 감정을 묶어 두는 것이다. 그리하면 상대방과의 거리를 친밀하게 하거나 적정선에 묶어 둘 수 있는, 현명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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