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받고 싶은 날
위로받고 싶은 날
  • 신찬인 충북청소년종합진흥원장
  • 승인 2021.11.03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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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신찬인 충북청소년종합진흥원장
신찬인 충북청소년종합진흥원장

 

어머님께서 심상치 않다는 형의 연락을 받고 마음이 다급해진다. 며칠째 식사를 못하신다고 한다. 얼마 전 뵙고 왔으니 당장 별일이야 있겠냐마는 `이번에는 좀 다른 것 같다'는 말에 마음이 심란해진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도 그랬다. 형의 연락을 받던 날, 마침 직원 체육대회가 있었다. 몇 년째 거동을 못하고 누워계셨으니 `당장 무슨 일이 있을까'해서 저녁 무렵에야 병원으로 갔더니 의식이 없으셨다. 그리곤 열흘 정도 혼수상태로 계시다 한마디 작별인사도 나누지 못하시고 돌아가셨다. 유난히 가족들에게 집착하셨던 아버지를 그렇게 보내놓고 한동안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었다.

힘없이 차창에 와 닿는 보슬비의 파리한 촉감이 생기를 잃은 풀잎처럼 추연하다.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는 걸까? 어머님께서는 하나님을 믿지 않으셨으니 하나님 곁으로 갈 리도 없을 테고, 그렇다고 절에 다닌 것도 아니니 부처님이 계시다는 서방정토일 리도 없다. 평생을 집안일을 하며, 가족들을 보살폈으니 가족들 곁이 제일 편안한 곳 일진데, 이제 떠나시면 어디로 갈 것인가? 종교가 없는 사람들이야 생명이 다하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니, 죽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 또한 산사람의 부질없는 심사일 뿐이다.

정물처럼 고요한 방에서 어머님께서는 기척도 없이 누워 계신다. “엄마”하고 부르는 소리에 무슨 소리인가 해서 누운 채로 눈을 치뜨신다. 물기 없는 흐릿한 동공이 내 눈에 슬프게 와 닿는다. 그리곤 이내 “누구여”하신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찬인이여”하시면서 반겨 주셨는데 `이제는 자식을 알아보지 못하신다. 핏기없는 손을 꼭 잡으니 “참 따뜻하네”하시며 웃으신다. 내가 누구라고 몇 차례 확인해 주고서야 “찬인이여”하신다. 그리곤 잠시 후, 또 누군지 모르겠다고 하신다.

어머님께서는 이제 속세의 자잘한 인연으로부터 벗어나고 있었다. 생명이 꺼져가는 어머님께 내가 자식임을 확인해 주는 것 또한 어머님을 위해서는 아니다. 속세의 인연을 조금이나마 더 붙잡고 싶은 좀 더 살아갈 자의 집착이요, 삶의 유희에 불과하다. 표정에 변화없이 미소 진 얼굴이 세상사 대수로울 게 없다는 듯 한없이 편안해 보인다.

아무것도 관심이 없다는 듯 조용히 미소만 띠고 계시던 어머님이 “이제 흙 보탬이나 해야지”하신다. 이곳에 오면서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는 걸까'를 곱씹었는데, 어머님께서는 묻지도 않은 말에 흙으로 가시겠다고 하신다. 이제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신 거다. 아버지 곁으로 가실 거냐고 묻자 또 대답이 없으시다.

추석 무렵 아버님 산소에 갔었다. 시내 주변에 있으니 오며 가며 가끔 들르곤 한다. 꽃을 갈아드리고, 술을 따라놓고, 절을 하고 나면 왠지 마음이 편안해진다. 아버님께서도 종교가 없으셨으니 어머님 말처럼 그저 흙 보탬을 하고 계실 텐데, 그래도 산소에 오면 앞에 계신 듯 “아버지 잘 계셨어요, 나 왔어요”하며 인사를 나누곤 한다. 비석에 묻은 흙을 닦아주고, 잡초를 뽑아 주며 아버님을 추모하는 것 또한 자신을 위로하는 의식일 뿐이다.

어머님의 머리맡에 놓인 거실장 한쪽에 작은 액자가 2개 놓여 있다. 누구 사진인가 보았더니 하나는 내 사진이요, 또 하나는 우리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저리도 가까이 두고 싶었던 가족을 이제는 못 알아보신다.

사람이 여행을 하는 것은 머무는 여행지에서 두고 온 집을 생각하고, 또 두고 온 사람을 생각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어머님께서는 세월에 떠밀려 이제 돌아올 수 없는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려 한다.

함께 울고 웃던 그리운 사람들, 가뭇가뭇 잊혀져 가는 오래된 기억들, 다시 올 수 없는 숱한 시간들, 많은 것들이 내 곁을 떠났다. 그 사라진 것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또 어디로 가려고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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