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色)에 대하여
색(色)에 대하여
  •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 승인 2021.11.03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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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화살나무는 아주 진한 분홍빛으로 물든다. 핫핑크가 딱 맞는 색으로 말이다. 복자기의 붉은 잎은 우아하게 붉다. 해에 비친 복자기 잎은 투명한 다홍빛 그 자체다. 감나무는 커다랗고 두꺼운 이파리에 주황물이 번져나가듯 물이 든다. 벚나무는 이파리 하나에 여러 색을 담아 물든다. 노랑도 조금, 빨강도 조금, 주황도 조금. 어느 이파리를 주워 들어봐도 예쁨 그 자체다. 이 다정스럽게 붉은 잎들을 보고 있자면 마음마저 따뜻해진다.

개나리나 은행나무는 전형적인 노란 단풍의 예다. 개나리 잎은 연두색이 살짝 감도는 노란 잎으로 물든다. 은행은 노랑의 극치라면 개나리는 노랑의 시작처럼 느껴진다. 느티나무는 노랗게도 물들고 붉게도 물든다. 한 나무에서 그렇게 물드는 것이 아니라 노랗게 물드는 느티나무가 있고 붉게 물드는 느티나무가 있다. 나무마다 다르게 물드니 노란 느티나무와 붉은 느티나무가 섞여 심긴 숲이나 길을 보면 그 색의 어울림이 참 어여쁘다.

가을에 잎들이 노랗게 붉게 물드는 이유를 과학은 이렇게 설명한다. 가을이 오면 기온이 내려가고 일조량이 적어진다. 광합성을 시작하는데 필수적인 정도의 빛이 들어오지 않으니 엽록소 생산이 중단되고 나뭇잎에서 초록빛은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한다. 초록이 줄어든 나뭇잎에는 숨어 있던 빨강 노랑 계열의 색소가 드러나게 되는데, 안토시아닌이 많으면 빨간색, 카로티노이드 색소가 많으면 주황색, 크산토필이 많으면 노란색 단풍이 든다.

초록은 모든 나뭇잎에 중요하고도 공통적인 색이다. 여름에 초록 잎이 아닌 나뭇잎은 원래 붉은 잎을 가진 몇몇 종을 제외하고는 전무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가을이 되면 초록이 진 자리에 자기가 가진 본색을 드러낸다. 원래 가지고 있던 숨은 색을 말이다.

본색은 사전적으로는 본디의 빛깔이나 생김새, 본디의 특색이나 정체를 의미한다. 그러나 본색을 드러냈다고 하면 숨겨져 있던 못된 마음이나 바르지 않았던 자세, 가려 있던 정체 등이 밝혀졌을 때 쓴다. 하지만 본색은 본디의 빛깔, 생김새, 특색, 정체 등 좋고 나쁘고의 선호가 담기지 않은 말이다.

사람에게도 본색이 있다. 본능이나 본성이라고 쓰기도 한다. 한 연구자는 성리학에서 보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말한다. 그는 고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식(食)과 색(色)이 곧 성(性)이다'(食色性也)라고 할 때 성리학에서는 인간의 본성으로 주장되는 맹자의 4단(四端)과 함께 그것과 병렬적으로 `세상을 움직여 나가는 원초적 세력'으로서의 `기아와 사랑'을 본능의 한 부분으로 인정했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 보면 측은히 여기고, 부끄러움을 알며, 감사하고 양보하고, 옳고 그름을 아는 인간의 본성은 `먹고 색을 탐하는 마음'과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의 본색은 그렇다.

본색이 드러나 더 아름다운 잎들을 보며 가만히 나를 되돌아 볼 수밖에 없다. 본색이 드러난 나도 더 아름다울 수 있을까? 우리의 타고난 본색 속엔 맹자의 4단의 마음도 숨어 있고, 식과 색을 탐하는 마음도 들어 있다. 식과 색을 4단의 마음에 합하게 영위하며 사는 것, 어쩌면 그것이 인생 가을에 접어든 사람들이 배워가야 할 방법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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