넋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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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창옥 수필가
  • 승인 2021.11.0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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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창옥 수필가
이창옥 수필가

 

나는 자영업자다. 30여 년을 자영업으로 밥을 먹고 살아 왔으니 헤아려 보니 내 인생 절반이 넘는 세월이다. 그래서일까. 주변에선 웬만한 일에는 흔들리지 않고 가게를 운영하는 줄 생각한다. 모두의 기대처럼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유감스럽게도 그건 천만의 말씀이다. 좀 더 정직한 표현을 빌리자면 빠르게 진화하는 세상을 허둥지둥 따라가느라 숨이 턱까지 차올라 주저앉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몸으로 하는 일이야 이골이 나서 요령을 피우기도 하고 쉬어 가면서 해도 되지만 나이가 들어서인지 변해가는 세상의 흐름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일들이 만만하지가 않다.

우리 가게는 치킨 체인점이다. 많은 사람이 치킨점이라는 말보다 통닭집으로 불리던 예전에는 모든 주문을 전화로 받아 닭을 튀기고 준비해서 직접 배달을 했었다. 어쩌다 고객과 마찰이 생겨도 전화로 충분히 소통과 교감을 할 수 있었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요00 배달 00 등등 배달 중계대행사들이 달콤한 미끼를 던지며 고객과의 틈새로 파고들었다. 덩달아 배달대행업체까지 우후죽순 생겨나더니 위세들이 대단하다. 요즘의 우리 현실은 그들의 힘에 기생하지 않고는 가게를 운영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위세에 눌려 울며 겨자 먹기로 이 땅의 많은 자영업자가 그들에게 엄청난 수수료를 내며 가게를 운영하고 하고 있다.

그들 때문에 자영업의 생태계가 파괴되었다고 자조적인 자영업자들의 목소리도 남의 일이 아닌 내일 되어 버린 지 이미 오래다. 살아남으려 안간힘을 쓰며 자영업자들 간의 경쟁도 치열해졌다. 그 경쟁이라는 것이 별수 없이 제 살 깎아 먹는 할인쿠폰과 각종이벤트를 남발하는 것이다. 아니 그것 밖에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게 요즘의 현실이다.

지금은 인식이 많이 달라졌지만, 아직도 할인쿠폰을 본사나 배달00 요00 대행사에서 베푸는 선심인 줄 아는 고객들도 더러 있기는 하다. 만약 그랬다면 자영업 생태계가 파괴되었다고 자조적인 소리를 하겠는가. 단언컨대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런 일들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흔히들 반반 부담이라고 하던가. 프랜 차이즈 매장들은 모든 할인행사를 반반 부담하며 가게를 운영한다.

처음 고객들의 원성을 자자하게 들었던 배달요금도 어찌 보면 자영업자들이 살아남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방법의 하나였을 것이다.

고객들 입장에서는 휴대폰 하나로 이곳저곳 할인을 많이 해주는 곳을 찾아다니며 저렴하게 배달음식을 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마는 그 할인쿠폰이 결국은 자영업자들의 한숨이 깃든 피눈물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동종업계의 지인이 늘 넋두리로 하는 말이 있다. “본사에 뜯기고, 배 땡, 요 땡에 뜯기고요, 쿠폰수수료로 뜯기고, 거기다 울며 겨자 먹기로 리뷰이벤트로 고객한테 뜯기고요. 배달 대행 업자에게 뜯기며 사는 우리 같은 배달 자영업들은 갑을병정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갑질만 당하는 하층민이지유”들을 때마다 웃어넘기지만, 그 말도 전혀 틀린 말도 아닌 것 같아서 참 씁쓸하다.

언제부터인지 누구나 너무 쉽게 내뱉는 일상 언어가 되어버린 갑질이란 단어가 지니는 무게를 생각해본다.

갑을관계라는 것이 한번 정해지면 영원히 지속되는 것도 아니고 상황에 따라 내가 누군가의 을이 될 수도 누군가 갑이 되어 살아갈 수도 있지 않겠는가. 지인의 말처럼 자영업자들이 항상 갑질만 당하며 사는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이곳저곳에서 갑질을 당하며 산다고 넋두리를 하고 나면 속이 풀리는지 지인의 넋두리는 여전히 쉼이 없고 진행형이다. 그 넋두리에 나도 한발을 슬쩍 올리며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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