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를 현실로 만드는 공수처
우려를 현실로 만드는 공수처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1.10.31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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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검찰 개혁의 결정판으로 꼽히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출범할 때 제기됐던 문제는 크게 두가지 였다. 독립성과 중립성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하나였다. 민주당은 지난해 말 공수처법 국회 처리를 앞두고 7명으로 구성된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회의 의결 정족수를 당초 6명에서 5명으로 변경했다. 야당 몫인 2명의 비토권을 원천 봉쇄함으로써 대통령과 여당의 의지대로 공수처장을 임명할 수 있게 됐다는 비판이 터졌다.

또 하나는 공수처가 위상에 걸맞는 수사 역량을 갖출 수 있겠느냐는 우려 였다. 민주당은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회의 의결 정족수를 변경하면서 공수처 검사 임명요건도 손을 봤다. 변호사 경력 10년 이상을 7년 이상으로 완화하고, 재판·수사·조사 업무를 5년 이상 수행해야 하는 실무경력 요건도 삭제했다. 입법·행정·사법부의 고위 공직자 7000여명에 대한 수사권을 갖는 공수처는 검찰을 능가하는 고도의 수사능력과 기법을 확보해야 한다. 그런데도 판·검사 경력 없는 변호사 출신까지 공수처 검사가 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춰 세간의 오해와 우려를 자초했다.

진짜 심각한 문제는 당시 제기됐던 문제가 현실이 돼가고 있다는 점이다. 공수처가 `고발 사주' 의혹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손준성 검사에 대해 청구한 체포영장과 구속영장이 최근 잇달아 기각됐다. 출범 후 발부한 첫 영장들이 퇴짜를 맞았으니 스타일을 제대로 구기게 됐다. 의욕이 넘쳐 영장을 서둘다 보면 허점이 생길 수도 있을 테고, 법원과 시각이 달라 기각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기각된 영장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드러난 무모함과 미숙함이다.

공수처는 체포영장이 기각된 지 사흘 만에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법원이 피의자를 구금한 상태로 수사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며 체포영장을 반려했는데도 곧바로 같은 내용과 목적의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니 발부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법조계에서는 체포영장이 기각된 피의자를 조사하지도 않고 바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사례는 전무하다고 입을 모은다. 추가 조사를 통해 사안을 보완한 후 체포영장을 재청구하는 것이 상식이라는 것이다. 공수처가 구속영장에 문제의 고발장 작성자를 `성명 불상의 검사'라며 특정하지 못한 점도 수사력의 한계를 보인 대목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공수처가 기각 가능성이 100%에 가까운 구속영장을 강행한 배경을 놓고도 뒷말이 많다. 신속한 수사를 촉구해온 여당의 압박에 떠밀려 무리수를 뒀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민주당의 `고발 사주 국기 문란 진상규명 TF' 단장인 박주민 의원은 공수처가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과정에서 “수사에 속도를 내야 하는 만큼 영장은 반드시 발부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당장 “민주당이 공수처에 영장을 사주했다”는 야당의 반발을 불렀다.

민주당은 공수처가 지난 5월 첫 사건으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해직교사 부당채용 의혹을 수사하기로 하자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냈다. “제도적으로 보완할 문제이지 형사처벌 할 문제가 아니다”, “소 잡는 칼을 닭 잡는 데 써서는 안 된다”, “이러려고 공수처 만들었나 자괴감이 든다' 등의 반응을 쏟아내며 공수처를 성토했다.

민주당은 정치 중립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야당의 반대를 무릎쓰고 사실상 단독으로 공수처를 출산했다. 공수처가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1차적 책임을 져야 할 정당이라는 얘기다. 미래 어떤 정권이 공수처 악용에 써먹을 좋지않은 선례를 만드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길 권한다. 공정과 중립을 지키려는 공수처의 자체 의지도 필요하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인사청문회에서 “여당 편도 아니고 야당 편도 아니고 국민 편만 들겠다는 자세로 일하면 정치적 중립성이 지켜지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공수처가 미덥잖다는 평가가 나오는 요즘 그가 새삼 되새겨야 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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