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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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7.20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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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남대 단상(斷想)
한 덕 현<편집국장>

이명박 캠프의 한나라당 박희태 의원이 아무 생각없이 청남대를 입에 올렸다가 혼쭐이 났다. 지난 11일 어느 자리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 갇히는 바람에 야당 죽일 생각만 하고 있다. 청남대를 다시 환원해 대통령이 외국 정상들과 골프도 치면서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도록 해 줘야 한다"고 말한 것이 화근이 됐다. 물론 이 말은 청남대를 환원해야 한다는 일종의 당위론을 제시한 것이 분명 아니다.

정치인들이 늘 그렇듯, 상대를 깎아 내리기 위해 툭 던진 말인데도 충북으로선 이것조차 듣기에 아주 거북하다. 지가 뭔데, 뭘 알기나 하고 헛소리냐는 공분(公憤)이 급기야 지난 18일 청원주민들의 청남대 시위로까지 이어졌다.

박근혜 캠프의 입장에선 호재를 만난 격이지만, 그렇다고 이를 더 이상 정쟁으로 몰고 갔다간 오히려 손해볼 수도 있다. 정치적인 농담은 그 자체로 끝내는 것이 좋다. 만약 박희태가 작심하고 청남대 환원을 주장했다면 충북에서의 대선은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아마도 이명박의 표가 우수수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을 것이다. 그만큼 청남대는 충북인들에게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설령, 박희태의 발언이 청남대에 대한 그의 평소 잠재의식에서 나왔다 하더라도 앞으로는 더 이상 그런식으로 청남대를 입에 올리지는 못할 것이다. 어쨌든 이번 일은 청남대 문제에 관한한 정치인들에게 확실한 경고를 남긴 꼴이 됐다. 아울러 정치는 생물이라는 속설을 많은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일깨우는 계기도 됐다. 정치인들에게 있어 말 한마디의 실수와, 또 그것이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생명력을 키워가는지를 이번 해프닝이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다.

사실 청남대는 그 상징적 의미가 무색하게 충북에 있어선 여전히 무거운 '짐'으로 남아 있다. 당장 이곳을 찾는 관람객이 줄어드는 것도 문제이지만, 앞으로 이를 자원화할 근본적 창안(創案)이 없다는 게 더 큰 고민이다.

뻔한 얘기이겠지만, 청남대가 그나마() 주목받는 이유는 그곳이 대통령 별장이었다는, 그래서 대통령과 연관된 무엇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하여 역대 대통령이 사용하던 집기를 전시하고 사진을 내걸었지만, 관람객들의 반응이 시큰둥했다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 있도록 인근에 대규모 놀이시설 내지 위락시설을 만들자는 주장까지 제기될 정도다.

그러나 특정 시설, 특정 아이템의 자원화는 그 자체의 정체성을 상실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이는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이 경쟁적으로 숱한 행사와 축제를 쏟아내지만 대부분 실패 내지 예산낭비로 귀결되는 결정적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지금 당장 어렵다거나 눈앞의 이익이 보인다고 해서 남의 것을 곁눈질 한다면 100% 실패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렇다. 강원도 화천군의 겨울 산천어 축제가 해마다 대박을 터트리자 인근 철원군이 메기축제를 시작했다가 말 그대로 예산만 낭비하고 X망신을 당했다. 함평 나비축제가 뜨니까 인근 자치단체들이 박쥐니 뭐니 하며 별 희한한 것들을 내세워 행사를 시작했지만, 역시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 결국 청남대가 성공하려면 청남대 그 자체의 자원과 이미지로 승부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꽤 오래지만 한번은 청남대를 취재하면서 아주 재미있는 얘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인근 현암사라는 절이 대통령 경호 때문에 곤혹을 치른 일, 어부들이 청남대 주변 대청호 안의 경호 철망을 뚫고 들어가 몰래 쏘가리를 잡은 일, 청남대 초병과 마을 처녀의 애틋한 사랑얘기, 솔직히 이런 것들이 청남대의 경치나 각종 전시물보다도 훨씬 흥미롭게 다가왔다. 청남대의 자원화, 이미지화는 바로 이런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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