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으로 소통하는 세상
손끝으로 소통하는 세상
  • 박소연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 교육활용팀장
  • 승인 2021.10.24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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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시선-땅과 사람들
박소연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 교육활용팀장
박소연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 교육활용팀장

 

길을 걷다 보면 올록볼록 튀어나온 노란색 점자블럭을 만날 수 있다. 얼핏 생각하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것은 지팡이를 짚고 점자블럭을 따라 이동해야 하는 시각장애인에게는 생존과 직결되는 `매우 중요한' 시설이다. 이때 시각장애인은 `흰색' 지팡이를 사용하는데 오로지 시각장애인들만 흰지팡이를 사용할 수 있도록 법으로 명시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매년 10월 15일을 `흰지팡이의 날'로 지정하여 시각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렇게 이동 시 보행을 돕는 흰지팡이 외에도 시각장애인에게는 또 다른 눈이 있다. 바로 `점자'가 그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시각장애인들은 송암 박두성 선생이 만든 한글 점자로 표기된 글을 손끝으로 읽으며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

예전에는 우리나라만의 점자가 없어 서양이나 일본의 점자를 배워야만 했다. 이에 일본어 점자를 배우느라 고생하는 시각장애인들을 안타까워한 박두성 선생이 한글 점자를 창안하였고, 이를 `훈맹정음'이라 하여 1926년 11월 4일에 배포하였다.

훈맹정음은 배우기 쉽고, 점의 숫자가 적고, 서로 헷갈리지 않아야 한다는 목표로 7년을 연구하여 만들어졌다고 한다. 언어를 6개의 점으로 표현하는 점자와 그에 대한 설명서뿐만 아니라 점자 개발 과정과 그 노력이 담긴 자료도 현재까지 남아 있는데 이 기록에는 시각장애인의 더 나은 삶을 위해 고민하는 박두성 선생의 마음도 듬뿍 담겨있다. 이는 글을 몰라 피해를 보는 백성을 위해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과 다를 바 없지 않을까.

이렇게 시각장애인을 위해 만들어진 훈맹정음은 지난해 12월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특히 이 훈맹정음은 시각장애인 관련 첫 국가문화재라는 커다란 의미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창안된 우리 점자로 만든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책은 얼마나 될까?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조사 결과를 참고하면 2020년에 출판된 책 중 점자책의 비율은 고작 0.2%에 불과하다고 한다. 과연, 이중에 문화유산에 대한 책이 있을까?

문화유산은 모두가 함께 누려야 하는 공공재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여러 요인들로 문화유산을 향유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이를 위해 작년부터 문화재청에서 국민참여예산으로 `동행, 문화유산'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으며 본 연구원도 도민들을 위해 `빛나는 우리를 만나다'라는 이름으로 사업을 시행 중에 있다.

특히 연구원에서는 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에 조금 더 힘을 쏟고 있다. 직접 문화유산을 탐방하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 외에도 청각장애인을 위한 문화유산 수어해설 영상과 시각장애인을 위한 문화유산 점자리플릿을 제작, 배포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장애인들이 문화유산을 향유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을지 새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도내의 수많은 문화유산 중에 장애인들을 위한 시청각 자료는 거의 전무한 상태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필자 스스로 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매우 낮았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특히 시각장애인은 모두 점자를 잘 알 것이라는 생각도 그중 하나였다. 장애등급에 따라 큰 글자를 볼 수 있는 경우도 있는데 이럴 경우 오히려 점자를 알지 못한다고. 그래서 본 연구원에서 발간하는 점자리플릿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볼 수 있도록 점자와 더불어 큰 글씨로 활자를 인쇄하였으며 뒷면에는 점자 배열표도 넣어 누구나 점자를 학습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런 작은 노력들이 차츰차츰 쌓이면 나와는 조금 다른 눈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더라도 그것이 문화유산을 즐기는데 어떤 방해도 되지 않는 날이 얼른 오리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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