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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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 승인 2021.10.24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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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며칠 전, 오후에 마신 커피 때문인지 잠도 오지 않고 책도 읽히지 않아 심드렁히 티비 채널을 돌리다 EBS에서 중국의 소수 민족을 기행하는 프로를 보았다. 다양한 민족의 문화와 생활양식 등이 흥미로웠고 해외여행 뿐만 아니라 국내 여행도 힘든 시기에 작게나마 위로가 되었다. 그들 대부분의 일상은 우리의 과거 모습과 비슷했다. 높은 지대에 사는 부족들은 아직도 농기계 없이 야크나 소에게 농사를 의지하고 있는 모습은 정겹기만 했다. 가장 인상 깊게 다가왔던 것은 취재진이 어느 부족을 찾아가든 그들의 첫인사가 `밥 먹었냐'였다. 낯선 사람을 경계하지 않고 무조건 환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릴 적 우리가 살던 분위기와 비슷했다. 지금 우리의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것은 상식이 되었고 길에 누가 쓰러져 있어도 모른체 지나치는 게 미덕이 되어 버렸다. 이처럼 지금은 자신과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는 것에는 무관심한 사회가 되었다. 그들의 모습이 남루하든 일상이 불편하든 순박함과 진실한 마음이 티비 넘어 내게도 전달되었다.



<내 모자 어디 갔을까?>를 쓴 존 클라센 작가는 사람들과의 소통의 부재에 관해 그림책을 쓰고 싶었다고 한다. 커다란 곰이 모자를 잃어버린다. 소중한 모자를 찾기 위해 숲속에서 만나는 동물에게 `혹시 내 모자 못 봤니?'라고 물으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자신이 모자를 잃어버린 것이 아니기에 동물들은 하나같이 성의 없게 답한다. 서로 마주보고 있지만 눈조차 마주치지 않고 대화도 퉁명스럽다. 곰이 예의 바르게 하는 말 `알았어, 어쨌든 고마워'라는 말도 건조하고 무뚝뚝하다. 곰은 바위에 오르려고 낑낑대는 거북이를 도와주기도 하지만 역시 뭐랄까 소통이 이루어진다기 보다는 기계적인 행동으로 보인다. 문득 한집에 살지만 서로 시간이 맞지 않아 신발장에 놓인 신발만 보고 산지 꽤 된 큰 아이가 생각났다. 출퇴근 시간과 활동하는 시간이 다르다보니 어느새 필요한 얘긴 문자로만 주고받고, 눈을 마주치고 밥 한 끼 제대로 한 적이 언제인지 기억도 가물하다. 마음에 찔림으로 다가온다. 이번 주말엔 삼겹살이라도 구워 먹으며 그간 못했던 얘기라도 해야겠다.



그러다가 곰이 대각성하는 시간이 찾아온다. 실의에 빠져 풀숲에 털썩 누워 있는데 사슴이 다가와 곰에게 관심을 갖는다. 처음으로 둘이 눈을 마주치고 대화다운 대화를 시작한다. 모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물었다. `빨간색이고, 뾰족하고, 그리고…' 하던 찰라 곰은 갑자기 모자가 어딨는지 떠올랐다. 빨갛고 뾰족한 모자를 쓰고서 어디서도 모자를 본 적 없고 자기는 모자를 훔치지 않았다고 화를 버럭낸 토끼가 생각난 것이다. 토끼가 쓰고 있던 모자까지. 곰은 단번에 토끼에게 달려갔다. 드디어 토끼와 곰은 서로를 마주본다. 이해관계가 얽힌 묘한 기운이 감돈다.



이야기엔 곰을 포함한 등장하는 동물들은 입이 없다. 소통의 부재를 단적으로 나타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진정한 소통은 무엇인가 고민하게 되는 책이다. 세상엔 입만 있는 사람, 귀가 없어 남의 말은 듣지 않는 사람, 눈이 있어도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사람 등 각자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사회 속에서 삶을 꾸려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함께 선택하고 결정해야하는 복잡한 구조 속에 있기도 하다. 사회학자들이 늘 하는 말이지만 확실히 우리는 보이지 않게 연결되어 있다. 이것을 인식한다면 나의 태도를 조금은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안부도 서먹해진 요즘의 시대, 먼저 다다가 이렇게 말을 꺼내면 어떨까. `밥은 먹었니?' 이것이 인간다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소통의 시작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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