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중조차 6
해중조차 6
  • 무각 괴산 청운사 주지
  • 승인 2021.10.21 19: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낮은자의 목소리
무각  괴산 청운사 주지
무각 괴산 청운사 주지

 

서늘한 달 어느새 동산에 떠오르고

쌀쌀해진 날씨에 산기운마저 숙연해라.

가을바람에 한 잎 날릴 때

외로운 나그네는 창틈에서 잠이 드네.



이제 가을의 빛깔이 고운 계절이 되었네요. 반갑습니다.

이 시간에는 무문관 제8칙 해중조차 6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무문관(無門關)의 여덟 번째 관문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분은 월암(月庵, 1079~1152) 선사로 그는 관문을 막고서 화두 하나를 던지고 있습니다.

월암 선사는 우리에게 묻기를 “해중(奚仲)이 백 개의 바퀴살을 가진 수레를 만들었는데 훌륭하게 완성한 후 두 바퀴를 들어내 버리고 축을 떼어버렸는데 도대체 그의 의중은 무엇인가?”라고 물었습니다. 중국의 전설적인 장인인 해중(奚仲)은 수레 제조의 천재였습니다.

바퀴살이 100개나 되는 완전한 바퀴를 만들었다는 것은 해중이란 장인이 얼마나 뛰어난 실력이 있었는지를 짐작하게 하지요.

또한 그가 만든 수레가 얼마나 고가의 완성품인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즘 고급 자전거도 바퀴의 살이 40개가 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런 고가의 수레를 천연덕스럽게 해중은 해체해 버렸단 말입니다.

도대체 해중은 무엇 때문에 수레를 해체해 버렸을까요? 해중이 수레를 해체했을 때 수레는 과연 어디로 갔을까요? 수레는 극락세계로 가버렸을까요? 수레는 아무 데도 가지 않았다는 말이지요.

어디로 갔다면 그것은 해체하기 전 고가의 그 수레를 욕심내었던 사람들 마음속의 수레일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이 수레를 고가에 팔아 볼 수도 있겠지만 이 앙상한 잔해로 남아있는 수레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집착은 바로 여기서 발생하게 되는데요. 이 수레가 해체되어 버리는 순간에 수레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겁니다.

이러한 통찰은 있는 그대로 사태를 보는 사람에게만 가능한 일로 평범한 사람이라면 아무래도 이 고가의 수레가 그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떻게 그가 해중의 수레를 과감하게 해체한 이유를 깨달을 수 있겠냐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월암 선사께서 여덟 번째 관문에 지켜 서서 해중조차의 공안을 던진 이유가 분명해질 것입니다.

여기에 월암 선사는 바로 무아(無我, Ana-tma)의 가르침을 깨달아 불변하는 것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 해중의 수레는 구사론(俱舍論: Abhidharmakos'a)에서 설한 것처럼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인연화합(因緣和 : sam. niv es´a)의 결과물로 우리들 자신과 모든 사물이나 사건들은 다양한 원인(因)과 조건(緣)들 이 조화롭게 화합해 만들어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설하고 있습니다.

바로 해중이 만든 이 고가의 수레는 바퀴나 축을 포함한 다양한 부속품들이 모여서 발생한 표면적인 효과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이 해중의 수레는 자아와 생명과 건강 그리고 사랑 등등을 뜻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것들은 모두 영원불변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단지 여러 원인과 조건들이 모여 함께 하나의 하모니로 울릴 때 간신히 존재하는 것들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당연히 인연이 다 끝나게 되면 신기루처럼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허무주의는 아니지요. 이는 햇볕 등의 다양한 조건들과 만난 어느 날 아름다운 꽃은 피게 된다는 것과도 같습니다. 만나지는 인연이 귀하고 귀하지만 동시에 인연이 끝날 때에는 집착하지는 말라는 말이지요. 이것이 바로 부처께서 설하신 중도(中道)의 진정한 의미라 여겨집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