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실 수첩
입원실 수첩
  • 장민정 시인
  • 승인 2021.10.1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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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장민정 시인
장민정 시인

 

며칠 전, 작은 수술을 하고 3박 4일 입원 했다가 지금은 통원치료 중이다.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어 침대에 모로 누워 뒤척이다 창밖을 본다. 칙칙하고 답답하다. 처서에 비가 오면 십 리에 천 석이 감한다고 했던가? 농부들 애타는 모습이 눈에 밟힌다. 날씨마저 짜증 나게 하니 이래저래 심란하다.

같은 병실을 쓰던 신 뭐라는 환자가 떠오른다. 헤몰호이드, 간단한 수술이라 조용히 병원에 누웠다 오겠다는 마음으로 나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입원했다. 8층 입원실에서 비 내리는 창밖을 내려보며 빗속을 기어가는 차들의 불빛을 바라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다음 날 2인실의 옆 환자가 들어오자마자 문턱이 닳도록 많은 문병객이 줄을 잇는다. 그녀도 나와 같은 수술이라 3일 입원이라는데 고개가 갸웃거려지도록 많은 사람이 문병한다. 시집간 딸 셋이 사위를 대동하고 들리고, 시댁 조카들까지 마누라를 데리고 와서 죽치고 앉아 부동산에 운수사업을 얘기하다가 간다. 그런가 하면 남편도 금 간 항아리 다루듯 살갑다.

어쩌면 저럴까? 나는 죽기 살기로 자식들을 키웠다. 딴엔 잘 키웠다고 목에 힘주고 다니지만, 우리 자식들은 전화도 자주 하지 않는다. 얼굴은 물론 무슨 특별한 날만 보는 게 고작이다. 가끔은 내가 독거노인이 된 듯 초라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면 엄살이 과한 걸까?

하지만 서운한 생각을 자주 하는 건 사실이다. 어느 땐 내가 두둑한 돈주머니를 차고 앉아있다면 아마 지금처럼 소원하진 않았을 것이란 볼멘 생각도 했다.

나는 외롭고 쓸쓸하다. 내가 먼저 전화해야 보고 싶은 아들놈들 목소리라도 들을 수 있다. 고까운 생각이 들 때면 나는 내 부모님께 얼마나 잘 해드렸는가 하고 스스로 묻는다. 잘 해드린 게 하나도 없다. 나 살기 바빠 좀 더 잘 살면, 조금만, 조금만 하고 미루기만 했던 후회스러운 생각뿐이다.

나와 비교해 보면 그래도 내 자식들이 났다. 그러면 됐지, 하면서도 시시때때로 외롭고 슬픈 건 어쩔 수 없다. 지지고 볶고 살다가 혼자 떨어져 사는 외로움,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때문일 것이다.

그런 내 처지와 비교되는 그녀에게 문병객이 다 돌아간 늦은 밤, 참 부럽다고 말을 건넸다. 어쩌면 아랫사람들의 정성이 한결같이 지극할 수 있는지, 어떻게 어른을 저렇게 잘 모실 수 있는지, 비법 좀 가르쳐달라고 했더니 그녀는 시큰둥하니 말을 받는다.

수만 평 부동산 알부자, 돈 버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다가 얼마만큼 이루어놓고 보니 자기 옆엔 아무도 없더란다. 오십이 넘어 상처한 네 딸을 둔 홀아비인 지금의 남편과 재혼한 것이 삼 년 남짓, 죽을 때 아무나 마음에 맞는 사람에게 다 줘버릴 것이라 공표하고 사는 중이란다.

그 나이 또래가 다 그렇듯 스스럼없이 과거도 말한다. 울산에서 못된 남편 몰래 땅문서를 챙겨들고 서울로 도망친 일, 어찌어찌해서 여관주인이 된 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던 여관업의 비법까지 털어놓는다. 참 더럽게 살았고 치사하게 돈을 모은 이야기지만 여자 혼자 보통의 담력이라면 어림없다고 그런 자신을 자랑스러워하기까지 한다. 뭐든 다 할 수 있는 돈! 깨끗하고 더럽고 가 어디 있는가! 돈은 위대한 돈일 뿐이다는 게 그녀의 당당한 지론이다.

그거였구나! 어떻게 살았든 돈이 있어야 사람대접을 받는 것이구나! 아니 돈이 사람 위에 있다는 생각이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전실 자식들이 다 자라서 맞은 의붓어머니에게 그렇듯 깍듯이 대한 것도 순전히 돈의 위력 때문이었다니, 개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쓰라? 손가락질하는 더러운 돈이라도 움켜쥐어야 행세하는 세상인심에 나는 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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