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연못, 검찰주의의 비극
작은 연못, 검찰주의의 비극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1.10.1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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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사람들은 깊은 산 속에 연못을 만들었다. 인심도, 기후도 메말라가는 세상을 걱정하며 언젠가는 생명수로 사용될 것이라는 희망의 작은 연못이었다. 깊은 산 속 작은 연못은 그러나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낙엽이 떨어져 물에 잠기고 무심코 지나던 곤충과 길을 잘못 찾은 동물들도 빠져 죽었으며, 사람들은 애초에 품었던 희망을 기다리지 못한 채 쓰레기를 마구 버리는 바람에 쓸모없는 연못이 되고 말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세상인심은 나아지지 않았고, 대지는 갈수록 더 메말라져 갈증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을 때, 사람들은 그제서야 깊은 산 속 작은 연못에 담아두었던 희망을 떠올리게 되었다. 물은 이미 더러워졌고, 사람들이 다시 온전하게 그 연못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깊은 바닥에 켜켜이 쌓여 있는 온갖 썩은 것들을 제거해야만 했다. 그런데 목소리만 크고 막무가내인 힘센 사람들이 연못의 썩은 물은 조금도 건드리지 말고 바닥의 썩은 것들만 퍼내라고 몽니를 부린다. 목이 말라 죽을 지경인 자식들을 위해 썩은 물을 퍼내려던 순한 사람들은 재판을 받게 되었고, 사람들은 작은 연못 맑은 물의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

나는 지금 김민기의 노래 <작은 연못>을 듣고 있다.

“깊은 산 오솔길/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지만// 먼 옛날 이 연못엔/ 예쁜 붕어 두 마리/ 살고 있었다고 전해지지요/ 깊은 산 작은 연못// 어느 맑은 여름날/ 연못 속에 붕어 두 마리/ 서로 싸워 한 마리는/ 물 위에 떠오르고// 여린 살이 썩어 들어가/ 물도 따라 썩어 들어가/ 연못 속에선 아무것도/ 살 수 없게 되었죠.”

그리고 풍자와 은유 사이의 상념에 빠져 탄식하고 있다. 졸지에 금지곡으로 찍힌 노래의 처지는 현실의 모순을 순리로 강요하려던 군사독재의 발악이 만들어 낸 시대적 풍자의 서글픔이었다고 치자.

노래에 앞선 이야기는 절차적 정당성만을 고집스럽게 내세우는 검찰주의에 휘말린 탓에 갈팡질팡 갈 곳을 잃은 탈원전의 근본적인 목표와, 과정의 실종을 우려하는 은유로 적당한지 모르겠다.

원자력 발전은 유사시 다른 에너지원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위험천만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다만 `지금 여기'의 `우리'가 값싸고 편리하며, 당장의 위협을 실감할 수 없는 와중에 영겁에 가까운 세월이 흘러야 안전해 질 수 있다는 점을 주지시키는 일은 쉽지 않다.

탈원전을 추구해야 하는 까닭은 불안한 원전사고의 위협을 해소하는 동시에 모든 `당대의 힘'이 미래와 역사를 향해 순리적으로 진화하는 지속가능성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인류의 순차적 성찰의 길을 가로막는 일은 검찰주의에서 비롯됐고, 그로 인해 탈원전을 향해 치달아야 하는 공동선은 잘/잘못에 따른 진영논리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

법과 도덕의 잣대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의심과 국민적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인물이 코로나19의 위급상황도 아닌 시기에 평소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공항에 나타났다? 이 모습을 보고 해외로 도망쳐 깊숙하게 숨겠다는 의도로 알아차리지 못하면 이를 정상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물며 그의 행적을 좇아 준엄한 법의 심판을 받게 하겠다는 선량한 의지와, 목숨을 내던진 피해자의 절규가 엄연한데 법 집행의 절차적 정당성을 고집하며 특정 집단에 대한 검찰주의의 집요한 자기편 보호본능과 왜곡된 과정의 공정은 지극히 위험하다.

검찰주의는 그러므로 위험하다. 법망과 도덕적 지탄을 모면하고 살아남은 `힘'은 반성하지 않으므로 세상에 더 큰 비극을 만들 것이다.

`해는 서산에 지고/ 저녁 산은 고요한데/ 산허리에 무당벌레 하나 휘익 지나간 후에/(중략)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죠.' 노래는 이렇게 끝날 수 있어도, 우리는 <작은 연못>의 맑은 희망을 끝까지 버리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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