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촌
이웃사촌
  • 박영자 수필가
  • 승인 2021.10.18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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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박영자 수필가
박영자 수필가

 

`참 매너 없는 사람

뒷 베란다에서 담배연기가 올라옵니다.

층간소음만 살인을 저지른다는 생각을 하지 맙시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을 때 저절로 게시판에 눈길이 갔다. 우리 통로에 누군가가 육필로 써 붙인 호소문이다. 아니, 호소문이라기보다는 경고문이다. 순간 기분이 쌔하다. `살인'이라는 단어 때문이었을까. 15년 넘게 이 아파트에 살았는데 가끔 실내 흡연을 자제해 달라는 방송은 들어 보았지만 이런 문구가 붙여진 것은 처음이다. 우리 아파트에도 이런 것이 붙다니, 세상이 점점 삭막해져간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진다.

아파트 실내 흡연이 문제다. 백해무익하다는 담배를 자기 집에서 피웠지만 이웃에 피해를 준 것은 사실이다. 이웃 간에 도움을 주지는 못 할망정 피해를 끼쳐서야 되겠는가. 실내 흡연문제가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고심 끝에 금연아파트틀 지정해 보아도 실효성은 미미하다는 것이다. 현행법은 이것을 법으로 다스리지도 못한다. 관리실에서도 권고만 가능할 뿐 엄격한 법적인 강제규정이나 규제는 안 된다.

어느 아파트에는 이런 호소문도 나붙었단다.

`안녕하세요. OOO호입니다. 저는 저희 집 베란다에서 담배를 핍니다. 저희 집에서 제가 피는 거니 그쪽들이 좀 참으시면 되잖아요? 내 집에서 내가 피겠다는데 뭐가 문제입니까. 관리소에서 항의전화는 몇 번 받았는데 전 별로 들을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담배냄새가 나면 그냥 창문 닫아주세요. 복도에 나오는 담배꽁초도 다 저라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참말 몰염치한 사람이다. 일말의 반성이나 변화의 기미를 찾을 수 없는 글을 협조문이라고 써 붙이는 이런 사람을 무슨 수로 막겠는가.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신문고에 접수된 간접흡연 피해 민원은 2844건으로 전년대비 19.2%나 증가했다고 한다. 최근 코로나19로 재택근무 하는 사람이 늘어났고, 집콕족이 많아지니 현실은 더욱 심각한 상황인 것이다.

그렇다고 `살인'운운하는 것은 너무한 것이 아닌가. 아파트 한 통로에 사는 사람들은 이웃사촌이다. 담배 좀 피웠다고 이런 살벌한 말로 엄포를 놓다니 심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층간 소음으로 살인을 저지른 끔찍한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 안 된다. 지난달 전남 여수의 한 아파트에 살던 A씨(34)가 층간소음 문제로 윗집을 찾아가 다투다 흉기를 휘둘러 40대 부부를 숨지게 하고 60대 부모에게도 중상을 입혔다. 10대 자녀 2명은 집안에 있어 피해를 모면했다고 한다. 이성을 잃은 사람의 행동으로 할 말을 잃는다. 층간소음의 가해자는 대부분 위층 사람들이고 피해자는 아래층이다. 개인의 이기주의와 도덕의식의 결여에서, 아니면 비뚤어진 자녀 사랑이 그 주범이다.

`가까운 이웃이 먼 사촌보다 낫다.'고 우리는 `이웃사촌'을 미풍양속으로 알고 살아왔다. 이제 이웃사촌의 따뜻한 인심도 기대하기 어려운 걸까. 코로나 시대를 맞아 그렇지 않아도 의기소침하고 우울한데 이웃끼리의 따뜻한 정(情)이라도 붙들고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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