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의 관성
게임의 관성
  •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21.10.13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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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룡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오징어 게임이 화제다. 게임에 참여한 사람들은 대부분 막장 인생들이다. 게임 설계자는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는 사람들을 골라서 게임에 참여시킨다.

일례로 기훈(이정재)은 회사에서 해고당해 시장에서 노점상을 하는 어머니에게 얹혀산다. 생활능력이 없어서 이혼을 당해 딸과도 같이 살 수 없고, 돈이 생기면 경마 도박으로 날리고 빚에 시달려 신체 포기 각서까지 쓰는 막장 인생이다. 어머니가 당뇨로 수술해야 하지만 수술비가 없어 수술도 하지 못한다. 수술비를 빌리기 위해 재혼한 전 부인의 가정에까지 찾아갈 정도로 자존감도 없다.

게임 참가자 456명 전원이 이와 유사한 막장 인생이다. 게임 설계자는 이런 사람들을 거금을 미끼로 하는 게임에 밀어 넣고 실험을 한다. 인간을 삶과 죽음의 경계에 몰아넣음으로써 인간성의 취약함을 노출시키고, 거금을 상금으로 제시해 인간 욕망의 추악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인간다움이 지고의 가치를 지닌다고? 그걸 얼마나 버티고 지킬 수 있을까? 바닥 인생들이 그런 걸 갖고 있겠어?

456명 중 255명은 영문도 모르고 죽는다. 상금이 얼마인지, 게임의 결과가 어떤 건지도 모르고 탈락해서 죽고 죽음을 피해 도망가다가 죽는다. 참가번호 001번 오일남 할아버지는 사람들이 죽어 나자빠지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게임을 즐긴다. 막장 인생이기 때문에 개죽음을 당해도 상관없어 하는 것 같다.

게임은 인간성의 바닥과 추악한 욕망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달고나 게임에서는 살아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바늘을 달궈 설탕을 녹이고 달고나를 혀로 핥아서 무늬 자국을 얇게 만들기도 하는 등 처절함을 보여준다. 줄다리기 게임에서는 힘센 사람을 모아 팀을 구성해야 승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약자를 버리고 친구와 연인 사이를 배신하는 일이 난무한다. 여기서 막장 인생으로 살면서 인간성이 바닥이 된 사람들이 드러난다. 그러면서 노약자들을 버리지 않고 함께 팀을 구성하는 인간성도 엿보인다. 구슬치기 게임은 가까운 사람끼리 싸움을 붙임으로써 인간성의 딜레마를 한층 더 드러내는 악랄함을 보인다.

막바지에 이르면 악랄하고 추악한 인간들은 다 죽는다. 감독은 악랄하고 추악한 자를 살려둘 정도의 아량은 없는 듯하다. 인간성 바닥인 101번 덕수는 212번(미녀)과 잠자리를 같이했지만 게임에 불리할 듯하니 뒤도 안 돌아보고 212번을 내팽개친다. 그러나 이런 인간성 바닥인 101번은 212번이 포옹을 풀지 않고 유리 다리 밑으로 함께 뛰어내려 탈락한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승리를 위해 다른 사람을 속이고 죽이는 걸 꺼리지 않았던 상우도 휴머니즘을 잃지 않은 기훈과의 싸움에서 결국 자살을 하고 만다. 결국 최후의 승자는 삶의 막다른 골목에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았던 기훈이 된다. 기훈은 인간 생명 희생으로 얻어진 상금 456억을 차마 쓰지 못하고 노숙자 가까운 생활을 한다. 마지막 도박은 게임의 설계자였던 001번 오일남과 기훈 사이에서 벌어진다. 일남은 창밖에서 얼어 죽는 노숙자를 누군가가 구해주면 기훈이 이기고 아무도 돌봐주지 않으면 일남이 이기는 게임을 제안한다. 인간성 일반에 대한 최후의 실험을 제안한 것이다. 이 게임도 기훈이 이긴다. 결국 게임을 구경하는 것보다 참여하는 게 훨씬 재미있어서 게임에 참여했던 001번 오일남도 무대에서 사라진다. 기훈의 인간성이 승리한 것이라구? 기훈은 상금을 인간답게 쓰고 딸을 만나러 미국으로 가다가 오징어게임 참가를 제안한 공유를 다시 만난다. 그리고 이병헌이 다시 여기 오지 말고 미국으로 가라고 하지만 기훈은 다시 오징어 게임 참여를 위한 길을 떠난다. 기훈은 모든 게임에 이겼지만 이미 게임에 중독되어 있었다. 게임 자체의 비인간적인 면에 분노했지만 승부의 짜릿함을 맛보는데 익숙해진 것이다. 인간성을 지킨다 하더라도 인간 욕망의 메커니즘을 이겨내는 건 또 다른 문제이다.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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