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 이야기
강아지 이야기
  • 이창수 시인
  • 승인 2021.10.12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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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창수 시인
이창수 시인

 

올해 봄 서울로 취직해간 아들이 지난주에 집에 다니러 오며 막 젖 떨어진 강아지 한 마리를 않고 왔다 친구에게 얻어 왔다. 입이 너부죽하니 귀는 턱밑까지 늘어지고 눈에는 장난기가 다글 다글 하다. 곱슬곱슬한 털 어구로 앞 난봉에다 지가 무슨 건달이라고 올백으로 넘긴 머리한 조막만 한 체구에 비실비실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참견 안 하는 게 없다. 본래 개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편인데 이 녀석만은 아무리 예쁘게 보려 해도 그게 잘 안 된다.,

아들 이야기만 나오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마누라 모양새로 봐서 아들이 데려온 저 녀석과는 아무래도 당분간 같이 살아야 할 모양인데 자꾸만 미워지니 그게 걱정이다.

무엇보다 이 녀석이 못마땅한 건 오던 날부터 내 등급이 깎인 거다, 녀석이 목욕할 때는 내 세숫비누를 쓰고, 잘 때도 같이 자자고 앙탈을 부리니 분명 이 녀석과 내가 동급이 돼버린 게다. 내가 생각하는 개는 주인이 주는 밥 먹고 주인을 보호하는 건데 말이다.

보통 강아지는 어미 떨어진 처음 며칠간은 의지할 곳 없어 깽깽대지만, 그 기간만 지나면 주인이 마련해주는 집에 기거한다. 또 해야 할 일이 뭔지를 알고 낯선 사람이나 주인 해할 듯한 무엇이 오면 짖어주고 주인 따라다니며 놀다가 주인이 방으로 들어가면 제 집으로 들어가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는 법인데, 요즘의 개는 통 그렇지를 못하다.

애완용은 주인을 보채며 주인을 외롭지 않게 하는 것으로 그 임무가 바뀌고, 토종의 집을 지키던 개는 50% 이상이 반에 반 평도 안 되는 철창 안에 갇혀 살다 보신탕으로 생을 마감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그래도 인연이 있어 내 집에 왔다고 `보리'라는 이름까지 지어주고 잘 지내보려고 노력해 보지만 이 녀석이 막무가내다. 조막만 한 녀석이 제 처지를 모르고 아무 데나 제 기분 내키는 대로 똥오줌 싸대고, 저랑 안 놀아준다고 앙앙댄다. 거실 한 귀퉁이에 임시로 자그만 박스에 출입구를 내고 캐시미론 솜으로 폭신한 요를 만들어 깔아 주었는데도 잘 때는 같이 자자고 깽깽댄다. 내가 뭘 좀 먹을라치면 저도 달라고 앙앙대 안쓰러워서 조금만 같이 놀아주면 움직일 때마다 앞뒤로 쫓아다니며 밟히기 십상이다. 그런다고 야단 좀 치면 눈물을 흘리니 이게 개인지 말썽꾸러기 아이인지 알 수가 없다.

옛날에는 아주 못된 사람을 가리켜 개만도 못하다 했고, 요즘은 잘못돼 가는 모양새를 가리켜 개판이라 하는데. 이 녀석이 제 분수를 모르고 하는 짓거리로 봐도 딱 맞는 표현인지 싶다.

개와 인간의 관계는 상고사에도 거론된다. 수렵으로 살아가던 때는 주인 따라 사냥하며 공존 공생하고, 농경시대에는 주인이 농사일로 집을 비우면 빈집을 지키고, 주인집 어린아이를 보호하려고 목숨도 버리며 싸우던 용감한 집짐승인데 왜 이렇게 변해버렸는지 모르겠다. 고려 최자의 보한집補閑集에 실렸다는 전라도 개 무덤에 대한 설화 같은 이야기는 이제는 듣기 어려운 옛 이야기가 돼버렸다.

요즘은 여자 같은 남자, 남자 같은 여자가 수없이 많은 세상인데 그까짓 개 처지 좀 변했기로 무엇이 대수일까 만은 개가 만약 말을 한다면 먼지 일으킨다고 꼬리 자르고, 똥 많이 싼다며 밥 덜 주고, 오줌 자주 싼다고 물 안주고, 얼굴이 맘에 안 든다고 성형수술시키고, 병 걸렸다고 내다버리는 그런 주인을 보고 뭐라고 말할지 참으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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