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캐며 꿈 찾는 金川, 그리고 환경교육
황금 캐며 꿈 찾는 金川, 그리고 환경교육
  • 김명철 청주 금천고 교장
  • 승인 2021.10.11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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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역사기행
김명철 청주 금천고 교장
김명철 청주 금천고 교장

 

지명은 해당 장소의 지리적, 역사적, 문화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의 어휘 중 그 활용도가 가장 높은 것도 지명이다. 지명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무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유명사 가운데 그 수가 가장 많다고 한다.

`금천동은 본래 청주군 동주내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다. 1914년 일제의 행정 구역 통폐합 정책에 따라 탑동, 문외, 구하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금천리(金川里)라 이름하고 사주면에 편입했다. 이후 1920년 청주읍에 편입되면서 탑동(塔洞)과 금천동(金川洞)으로 분리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복개천으로 본래의 모습이 없어졌지만 금천(쇠내개울)에 관해서는 오래전부터 다음과 같은 지명과 관련해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온다.

한양을 향해 길을 떠났던 나그네 한 사람이 쌀안(米院)에서 하룻밤을 묵고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무렵 청주성 남문 밖 합수머리에서 발을 담그고 여독을 풀고 있었다. 맑고 시원하게 흐르는 잔여울 모래 속에 발을 묻고 앉아 있으려니 오랜 발걸음으로 인한 여독이 한꺼번에 밀어닥쳐 물에 발을 담근 채 괴나리봇짐을 베고 오수를 즐기게 되었다. 한참이 지난 후 잠에서 깨어 발을 물속에서 빼어 내려고 일어나 앉았다. 나그네는 양발 사이에 고여 있는 모래 속에서 둔탁한 황금색 모래가 왕모래에 끼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것은 틀림없는 금이었다. 갑자기 황금을 물속에서 발견한 나그네는 설레는 가슴을 억누르고 근처에 있는 협곡을 파서 적당량의 토사를 함지에 담아 일어 보았다. 그러자 뜻하지 않게도 많은 양의 금이 나왔다. 이렇게 되자 나그네는 한양 가기를 포기하고 이곳에 막장을 친 뒤 덕대를 구해서 금점판을 이루기 시작했다. 금은 합수머리에서 시작해서 북쪽으로 목암산 호암리 방면의 하천을 중심으로 해서 상당량이 매장되어 있었다. 마침내 소문은 팔도 각지에 퍼져 수많은 금쟁이들이 모여들었고, 근처에는 객주방과 술집, 밥집이 늘어서게 되었다. 이때부터 합수머리에서 호암리에 이르는 하천을 `금이 나오는 내'라는 뜻으로 `쇠내개울'(金川)이라 불렀다는 것이다.

`金川'이라는 한자 지명은 18세기의 여지도서(輿地圖書)에서 처음으로 확인된다. 이 책에는 `金川'이 청주 동쪽 5리에 위치하며 청토(靑土)라는 토산물이 많이 나온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철'이 청주의 토산물임이 분명히 지적되어 있다. 이로 보아 `金川'이라는 한자 지명이 `철' 또는 `금'과 관련해서 나온 지명임이 분명해진다.

탑동에서 금천동을 가로질러 용암동으로 가는 도로변 인도에 아담한 조각 형상이 있다. 한복 차림의 조상이 열심히 사금을 채취하는 모습이다. 그 아래에는 개울이 흐르는 모양도 만들어 놓아 제법 그럴듯하다. 이곳이 황금을 채취하던 곳임을 알려 주려고 만든 것 같다.

필자가 금천고에 평교사로 근무하던 25년 전에는 금천동 인근에 쓰레기 매립장이 있어 악취가 나고 환경이 열악했는데 이제는 아파트 단지로 변해서 상전벽해라는 말이 무색하다. 그러나 그 엄청난 쓰레기를 흙으로 덮어서 묻었다고 해서 그 속의 오염물질이 없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토양 오염과 그로 인한 수질 오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분석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연은 인류에게 역습해 올 것이다.

황금을 채취하던 아름다운 금천이 `맑은 고을 청주'의 황금 강이 흐르는 금천이 되길 소망한다. 21세기 진정한 황금은 인재이고 사람이다. 그 황금을 더 큰 황금으로 자라게 하는 바탕이 깨끗하고 살기 좋은 환경이다. 황금 같은 인재들이 환경 교육의 최일선에서 황금 덩어리로 성장하는 교육 특구 청주를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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