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무엇이 되어
누군가에게 무엇이 되어
  •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 승인 2021.10.07 2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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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제노비스 신드롬'이란 말이 있다. 미국 뉴욕에서 키티 제노비스라는 여성의 살해사건에서 유래한 말이다. 35분간이나 계속된 살해 현장을 38명이 창문으로 지켜보고 있었으나 이들 중 누구도 도와주거나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고 한다. 만약 내가 목격자였다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해본다. 내 안의 폭력성을 투사해 어쩌면 살해 현장을 마치 투견 판 구경하듯 멀찍이 서서 인상을 찡그리고 있지만, 은근히 즐기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스무 살 이라면 달라졌겠지만) 지금 우리나라 국회에선 `착한 사마리아 법'이 계류 중에 있다. 공중에 계속 떠돌기만 하고 법제화가 되지 못하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개인의 자율적 도덕심에 죄의식과 범죄자란 낙인이 될 수도 있는 만큼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 사회 전반적 흐름이다. 또한, 요즘엔 친구 관계라도 나에게 1%라도 이익이 없으면 쉽사리 움직이지 않는다.

이 땅에 정의는 어디로, 양심과 인간애가 점점 사라지는 끝을 알 수 없는 블랙홀 같은 곳에서 사는 기분은 나만 느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런 면에서 강경수 작가의 그림책 <꽃을 선물할게>는 우리에게 무엇을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묵직한 물음을 안겨준다.

한적하고 평화로운 숲에 사는 곰은 하루에 세 번이나 무당벌레를 만난다. 거미줄에 걸린 무당벌레를 자연의 법칙에 어긋나는 일이라며 구해 주지 않는 곰. 자기와 상관없는 일이라는 말이다. 전형적인 방관자이다. 그러나 무당벌레는 절실하다. 목숨이 달린 일이니 그럴 것이다. 무당벌레는 거짓말까지 하며 살려줄 것을 애원하지만 곰은 자기에게 이득이 없다는 것과 거미는 좋은 동물이라는 이유를 들어 두 번이나 거절한다. 좌절할 법도 하지만 무당벌레는 실패와 거절의 두려움 없이 끝까지 곰에게 도움을 청한다. 무당벌레의 간절함이 통했던 것일까, 곰은 자기에게 이득이 될 수도 있는 거래를 생각한다. 꽃을 좋아한다는 곰에게 무당벌레는 꽃에 붙은 진딧물을 잡아먹으니까 거미처럼 `좋은 동물'이라고 어필한다. 그리고 꽃을 좋아한다면 적어도 한 번쯤은 자기를 구해 줄 의무가 있다고 당차게 말한다.

곰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적막한 숲에 밤이 찾아오고, 텅 빈 거미줄을 확인한 거미가 씩씩대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작고 하찮아 보이는 무당벌레의 간절함에 귀를 기울인 결과다. 이듬해 봄, 들판엔 아름다운 꽃들로 넘쳐나고 여자친구와 함께 꽃밭을 걷는 곰 커플의 뒷모습이 봄볕에 빛나고 있었다.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이익이 되지 않으면 일어나는 일에 관심이 없는 곰처럼 우리는 방관자가 되기 쉽다. 그리고 요즘 사람들이 예전과는 다르기에 선뜻 잘 모르는 상황에 끼어들기가 난감할 때도 있다. 3인의 법칙이란 게 있다. 무언가를 이루고자 한다면 뜻이 같은 3인이 모여야 한다는 이론이다. 혹은 선동하는 1인과 그것을 따르는 2인이 있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까지 움직여 큰 힘을 낼 수 있다. 이것은 옳지 않은 걸 옳게 만들 수도, 옳은 걸 옳지 않게 만들 수도 있는 권력이다.

지금 우리 주위에는 힘을 모아야만 하는 많은 일이 있다. 당장은 내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그 안일함과 이기적 생각이 부메랑이 되어 내게 돌아올 수도 있음을 기억하자. 요즘 나는 환경과 탈핵 운동을 지지하며 일상에서 일회용품 줄이기와 전기 아끼기, 비닐 쓰지 않기 등을 훈련하고 있다.

작은 힘을 모아 큰 힘이 되면 우리는 더 좋은 환경과 `지금'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가슴에 켜둔 촛불 하나 꺼지지 않도록 지키는 것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혁명은 나로부터 시작함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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