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언어 바르고 쉽게 써야 한다
공공언어 바르고 쉽게 써야 한다
  • 장충덕 충북대 국어문화원 교수
  • 승인 2021.10.07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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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장충덕 충북대 국어문화원 교수
장충덕 충북대 국어문화원 교수

 

“글로벌 시대에 영어가 들어가야 폼이 나지 촌스럽게 그게 뭡니까?”

얼마 전 한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자문단 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회의가 진행되던 중에 위원 중 한 명이 한 말이다.

당시 회의 주제는 그 지방자치단체의 구호(슬로건)를 제정하는 것이었다. 회의가 진행되며 여러 아이디어가 나오던 중에 한 위원이 이런 말을 하며, `글로벌', `스마트' 등을 넣어 만들자고 주장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대부분의 사람이 이 말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었다. 결국 몇몇 위원의 반대로 영문 구호로 결정되지는 않았지만, 외국어나 외래어를 사용하는 것이 고급스럽다고 생각하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서 기분이 씁쓸했다.

이처럼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의 구호를 보면 영어 단어가 포함된 경우가 많다.

한 방송에서 인천공항으로 입국하는 외국인들에게 지방자치단체의 구호들을 보여 주면서 무슨 뜻인지 물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대부분의 외국인이 무슨 의미인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한국인도 모르고 외국인도 이해하지 못하는 영문 구호가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

공공기관의 영어 사랑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공공기관 누리집에서 `그린파킹 조성 사업'이라는 정책 용어를 본 적이 있다.

처음 들었을 때 주차장에 나무를 심어서 푸르게 만드는 사업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린파킹 조성 사업'은 주택가 주차난 해소를 위하여 주택의 담장이나 대문을 허물어 내 집 안 주차 공간을 만드는 사업이었다.

이외에도 공공기관에서 사용하는 정책 용어들을 보면 `플래그십 프로젝트'니 `러닝 팩토리', `스마트 팜 테스트 베드' 등 설명을 듣기 전에는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려운 말들이 넘쳐난다.

이들 용어는 단순히 외래어나 외국어가 사용된 것이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그 용어가 무슨 뜻인지 직관적으로 알기 어려운 말이 사용되었다는 것이 문제다. 공공기관에서 시행하는 정책은 국민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므로 정책 용어는 국민 누구나 쉽게 바로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어려운 행정 용어와 정책 용어는 국민과의 소통을 가로막는 요인이 될 뿐만 아니라 경제적 손실도 초래한다. 2010년 국립국어원의 `공공언어 개선의 정책 효과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어려운 행정 용어 개선으로 연간 170억원 절감되며, 알기 어려운 정책명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114억원이라고 한다. 이처럼 공공기관에서 남발하는 어려운 행정 용어나 정책 용어가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

중앙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공공의 목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를 공공언어라고 한다. 공공기관의 행정 용어, 법령 조문, 각종 표지판이나 안내문 등 공공 매체나 공공장소에서 국민을 대상으로 사용하는 언어가 모두 공공언어에 속한다.

공공언어가 공공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기본적인 알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국민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해야만 국민의 공감과 참여가 이루어질 수 있다. 국민이 이해하기 어려운 말로 정보를 전달한다면, 그것은 공공의 목적에 위배되는 행위를 하는 것과도 같다. 따라서 공공언어는 쉬워야 하며 올바르게 사용되어야 한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을 나타낸다고 한다.

말은 단순히 입을 통해 나오는 소리가 아니라 그 사람의 생각과 철학이 입 밖으로 표현되어 나오는 것이다. 사회의 말인 공공언어도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의 품격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우리 모두 바르고 쉬운 공공언어를 사용하여 품격 있는 사회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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