깍두기도 좋았던 오징어 게임
깍두기도 좋았던 오징어 게임
  •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 승인 2021.10.06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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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오징어 게임'이 화제다. 공개 첫날 정주행을 마쳤다는 사람도 있고, 소문을 듣고 보고 있는 중이라는 사람도 많다. 1~2회차를 지나가면서 슬쩍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 등장한 놀이는 아니 게임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였다. 이처럼 오징어 게임에는 우리가 어릴 적 하던 여러 놀이가 등장한다.

오징어 게임이라고 부르면 뭔가 거창한 듯한데 어릴 적 우리 마을에서는 오징어가이상이라는 이름으로 그 놀이를 불렀다. 오징어가이상을 하려면 직사각형으로 긴 넓은 마당이 필요했다. 지금 기억해보니 아이는 없었지만 너른 마당을 지닌 푸근한 아저씨 집 마당이 우리의 오징어가이상 놀이터였다. 저녁 해질 무렵 농사일을 마치고 돌아오신 아저씨가 우리들 노는 모습을 어여쁘게 바라보던 그때가 눈에 선하다.

오징어가이상 놀이를 위해서는 커다란 동그라미, 세모, 네모 모양이 붙어 있는 그림을 마당에 그리게 된다. 동그란 부분은 공격진영, 세모와 네모 부분은 수비 진영으로 세모 부분의 한쪽 모서리는 공격팀의 동그란 부분과 겹쳐지는데 공격팀의 최종 목표는 이곳을 터치하여 `만세'를 부르는 것이고 성공할 경우 또다시 공격이 가능하다. 반대로 수비 측의 경우는 공격 측을 모두 제거해야 하며 이 경우 공수가 교대된다.

이 정도 기억이면 오징어가이상의 달인이라도 될 법한데 깍두기 신세였던 나는 마당에 그려진 오징어가이상 그림만 선명하게 떠오를 뿐 그 구체적인 규칙이나 이기기 위한 방법 같은 것들은 떠오르지가 않는다. 깍두기 처지에 맞게 팀별 리더가 하라는 대로 움직일 뿐이었다. 혹 둔한 움직임 때문에 상대팀에 생명을 잃는다 해도 금방 저쪽 편에서 뛸 수 있으니 그리 아쉬울 것도 없었다.

깍두기는 승부에 그닥 영향을 미치지도 못하는데다 어느 팀의 승리에도 기여한 바가 없으니 그저 잠시 뛰어놀다가 슬쩍 사라져도 모를 그런 위치였다. 그래도 오징어가이상을 하며 뛰는 그 순간은 참 좋았다.

주로 깍두기는 편을 짤 때 홀수로 한 명이 남는 경우 남는 사람을 놀이에 참여시키기 위한 역할을 이르는 말이었다. 요즘 깍두기는 무를 반듯하게 썰어 담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고 한다. 김치를 담게 되면 무를 채 썰어 소를 만들게 되는데 무채를 썰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썰다 썰다 작은 조각이 되면 채를 썰기가 쉽지 않아진다. 그래서 그 작은 조작을 모아 그냥 깍둑깍둑 썰어 담은 것이 깍두기라고 한다. 반듯한 모양이 아닌 제멋대로 짝이 맞지 않는 그래서 깍두기가 되었다.

놀이에서 깍두기도 그랬다. 보통 어리거나 약하거나 또는 놀이에 정상적으로 참여하기 어려운 아이들이 주로 깍두기를 맡는다. 깍두기는 좀 부족해도, 잘 못해도 괜찮았다. 깍두기에게 허용적인 우리 놀이 문화 덕분에 누구나 놀고 싶다면 나처럼 깍두기로 놀이에 함께할 수 있었다. 우리 어릴 적 동네 놀이는 죽자고 이기자고 덤비던 게임이 아니라 노는 시간 자체를 즐기는 과정이었다. 내일도 모래도 매일 같이 놀아야 하는 친구끼리는 누가 이겼는지보다 얼마나 재밌게 놀았는지가 훨씬 더 중요했으니 말이다.

각 당의 대선 경선으로 나라가 시끌시끌하다. 정치에서야 깍두기를 둘 수도 없고, 오직 한 명의 대통령만 선출되니 경쟁이 심한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어 보인다. 그렇더라도 선거를 마치고 우리는 여전히 같이 살아가야 할 친구이고 이웃이 아닌가? 결과보다 얼마나 즐겁게 놀았는지가 중요했던 어릴 적 놀이를 생각해보자. 그 속에 답이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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