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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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정순 수필가
  • 승인 2021.10.04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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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변정순 수필가
변정순 수필가

 

무거운 몸이 마음을 끌고 산책을 나선다.

사람 관계에 있어 내 생각과 뜻이 맞지 않아 울적해진 터에 걸으면 좀 개운해질 것 같은 마음에서다. 지난날엔 읍내목욕탕에 들러 뜨거운 물에 푹 담그고 나면 몸과 마음이 한결 상쾌했었는데, 아직은 거리두기로 조심해야 하는 사회현실에 맞추다 보니 혼자 숲속을 찾는 일이 잦다.

모처럼 숲속 나뭇잎과 눈 맞추며 걷는다.

팔월에는 꽃 향수, 매혹적인 칡꽃 향기를 음미했던 곳, 운 좋으면 청솔모가 재주부리는 모습도 볼 수 있어 좋은 곳, 봉학천이 흐르는 양쪽으로 도열한 벚나무 오리나무, 단풍나무, 잣나무, 삼나무숲과 상수리나무가 늠름하게 서 있어 참 멋진 숲이다. 백학 한 쌍이 노닐 것만 같은 숲속에는 풋도토리가 툭 떨어져 바닥에 구른다.

백학이 짝을 지어 날려고 하는 형국이라 붙여진 이름 `봉학산' 아래 자리 잡은 봉학골산림욕장 '쑥부쟁이 둘레길`에 닿았다.

청아한 하늘빛을 받아 연보랏빛 고운 꽃을 피운 쑥부쟁이가 하늘하늘 반긴다. 야들야들한 꽃가지를 휘어잡아 코끝에 대니 연한 쑥 향이 내 몸속으로 들어오는 듯하다. 이 냄새는 가족을 위해 희생했던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진 전설 속 대장장이 딸 `쑥부쟁이'의 향기일까? 이 여인은 긴 목 같은 꽃가지를 늘어뜨리고 사랑했던 사람을 여전히 기다리고 있는 걸까? 아린 마음을 뒤로하고 무장애나눔길로 들어선다.

나는 늘 그랬던 것처럼 계곡 옆, 의자에 앉는다.

그 누구도 쉬어가도록 자리를 전부 내주는 의자, 한숨을 쉬며 머리를 뒤로하고 올려보니 하늘이 훤히 보인다. 푸른 잎으로 가득 메웠던 나무들이 부분부분 숱이 빠진 내 앞머리 밑처럼 휑하다. 한여름 푸르름으로 가득 찼던 풍성한 숲은 계절이 바뀌니 제 몸에 잎을 털어 내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가을, 겨울지나 봄, 여름이 다시 오고야 마는 순환 속에서 무성한 잎을 만들어 스스로에게, 또다시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이로움을 주려고 하는가.

얼마 전, 괜한 억지를 쓰다가 속을 끓여 위에 탈이 나고 말았다.

몸이 감당하지 못하여 생긴 일, 나 같은 사람은 더러 바깥 경계를 차단하는 방법도 좋으리라.

나의 존재에 대해 자존심만 굉장히 강한 사람, 그러면서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남들에게 답답함을 주는 사람이 내 안에 숨어있는 양가감정에게 “너만 긍정이면 무탈하게 사는 거야.”하며 정직하자고 타이른다.

살면서 남에게 하고 싶은 말 덜하고 안 좋은 말을 들어도 못 들은 척하며 사는 사람의 속마음은 어떻게 생겼을까? 내 앞에 침묵하고 장대하게 서 있는 저 나무들은 다 알고 있으리라.

길을 나서기 전, 우울하고 서운했던 마음이 서서히 계곡물로 잠수하며 적막감이 온몸을 누른다. 무거웠던 마음을 살짝 내려놓고 다시 발길을 옮긴다. 평소보다 발자국을 더 크게 띄며 더 빠르게 앞만 보고 걷는다. 숨이 차면서 자잘한 감정들이 사라져간다. 속 깊은 나무들이 모두 빨아들이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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