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목련
백목련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7.18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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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품은 장도
김 혜 식<수필가>

이따금 시내 근처에 있는 박물관엘 간다. 진열된 옛 물건들을 대할 때마다 그것들에서 조상들의 숨결을 느낀다.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상을 한눈에 볼 수 있어서다.

옛 물건들을 대할 때는 언제나 그렇듯 감회가 새롭다. 그 중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게 있다. 후석기 시대쯤에 사용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칼 모양의 돌조각이다. 이를 바라보노라면 '호모 사피엔스'들이 돌을 정교하게 다듬어 무기로 삼아 사나운 맹수들을 사냥하던 모습이 눈앞에 어리는 듯하다.

칼은 날이 시퍼렇게 서 있어 썩 마음에 와 닿는 물건은 아니다. 언제 어느 때 그것이 흉기로 변하여 나를 해코지할지 모를 일이어서 다루기 몹시 조심스럽다. 칼이 물건을 베고 썰고 깎는 연장이라는 것을 누구나 다 아는 일이지만.

요즘은 칼의 용도도 무척이나 다양해졌다. 멀쩡한 육신을 칼로 베고 다듬어 남에게 보여주는데 사용되기도 한다. 성형 수술이 그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칼로 인해 마음이 베이는 일도 숱하게 벌어진다. 생활 속에 용이하게 쓰이던 칼이 비수로 둔갑하기 시작한 것이다. 세태따라 그것의 의미도 변했다고나 할까.

세상일을 굳이 들추자면, 물질에 연연한 나머지 눈이 뒤집혀 남에게 칼을 들이대기도 일쑤이다. 인간으로서 차마 하늘보기 민망한 게 어디 이뿐랴. 재산을 노리고 부모까지 해하는 세상이다. 물질보다 소중한 게 분명 있으련만, 우린 그것을 애써 외면한 채 물질의 노예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누구를 탓하랴. 자신의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고 물질만 좇은 우리네 심성이 불러온 결과이리라.

그렇다고 칼이 이런 추한 용도로만 쓰이는 게 아니다. 예로부터 칼은 인간과 그 궤적을 함께 하였기에 치레로 사용되기도 했다. 우리 조상들의 정신세계를 환히 비춰주는 치레이자 생활용품이었다.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 소리에도 귀 기울일 줄 알고, 하늘에 흐르는 구름 한 조각도 예사롭게 넘기지 않았던 따뜻한 인간미가 그 속에 배 있다고나 할까.

남정네들은 허리춤에 장도를 차고 의리와 충절을 갈고닦고자 노력했다. 어른으로서 사람 몫을 제대로 하기를 마음에 새기기 위함이었으니, 현대를 살며 장도를 생각하면 왠지 엄숙함마저 느낀다.

무엇보다 칼의 용도가 아름다운 것은 지조를 세우고 절개를 지키기 위해 가슴에 품는 장도의 쓰임일 것이다.

외가에 가면 아직도 나의 외증조 할머니가 살아생전 쓰던 은장도가 보관돼 있다. 경주 김씨 집성촌에 대종손 맏며느리로 시집와 일찍 수절한 증조할머니께 은장도는 자신의 정조와 절개를 지키는 수호신이었으리라.

내 가슴에 시퍼렇게 날이 선 장도를 한번쯤 품어본 적이 있던가. 예의범절을 지키고 사람 도리를 다하기 위한 마음의 칼날을 나는 단 한 번도 준비 한 적 없는 듯하다.

나만이 아는 극도의 이기심을 한 칼로 뭉텅 베어버릴 맑은 칼날을 세우며 그 속에 움터오는 고귀한 정신을 이제라도 배우고자 마음의 장도를 내 품 속에 품어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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