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
가을날
  • 장홍훈 세르지오 신부 양업고 교장
  • 승인 2021.09.30 18: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낮은자의 목소리
장홍훈 세르지오 신부 양업고 교장
장홍훈 세르지오 신부 양업고 교장

 

10월의 첫날이다. 한 알의 붉은 사과 속에 구름과 대지와 강과 태양과 달과 별과 땀과 사랑이 있다고 노래한 그 시인의 가을이다. 쌀 한 톨 속에 하늘(天)과 땅(地)과 사람(人)이 들어 있다는 오곡백과의 가을이다. 아니, 어떻게 한 알의 붉은 사과와 조그만 쌀 한 톨 속에 하늘과 땅과 사람이 들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감사의 마음으로 보면 이제야 결실로 돌아오는 한 알의 붉은 사과와 쌀 한 톨이 다르게 보인다. 그렇게 가만히 들여다보면 누구라도 시인이 되어, 열매에 깃든 하늘과 햇빛과 땅의 거름과 사람의 땀방울을 보게 된다.

대자연이 열매로 익어가는 계절, 그러면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익어 가는가?

사람의 마음이 익어가는 숙성도에 따라 동물성, 인간성, 신성이라는 세 가지 단계가 있다고 한다. `동물성'이란 한 대를 맞았으면 열대를 때리려는 마음으로 미움과 복수, 파괴와 폭력의 성향, 잘해 주었는데도 고마움을 모르는 것, 자기는 조금 주고 더 많이 받기를 바라는 마음, 돈과 재산을 늘리기 위해 부정적인 방법을 쓰는 것, 실패했을 때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 일등을 하고 싶은 사람이 공부는 하지 않으면서 기도하는 것 등이다.

`인간성'이란 한 대 맞았으면 한 대 때리려는 마음으로 보통의 용서와 사랑, 나를 사랑한 사람만 내 사랑을 주는 것, 내 소유와 재산을 늘리기 위해 정당하게 일하고 돈을 버는 것, 실패를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 열심히 공부하면서 일등을 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신성'이란 나를 때린 사람을 용서하고 기도해 주는 것으로 큰 사랑, 큰 용서의 마음, 나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았음에도 내가 먼저 없는 사람과 약한 사람, 상처 입은 사람을 도와주고 위로해 주는 것, 타인과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 일하고 돈을 버는 것, 실패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고 그 실패까지 봉헌하는 사람, 내가 일등 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일등 하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동물성' 쪽으로 갈수록 사람과 사회는 비참해지고 `신성' 쪽으로 갈수록 사람과 사회가 행복을 누리련만, 코로나 팬데믹 시대,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벌어지는 말과 사건들은 차라리 “때가 왔습니다. 지난여름은 위대했습니다.”라는 쪽으로 가야 할 가을의 방향과는 왠지 역주행을 하는 모습들이다.

한때 인터넷상에서 윤동주 시인이나 정용철 작가의 시로 잘못 인용되었던 국민 애송시 `내 인생의 가을이 오면'은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 김준엽 시인의 `내 인생의 황혼이 들면'이 원작이라 한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물어볼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가벼운 마음으로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많은 사람을 사랑하겠습니다//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열심히 살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맞이하고 있는 하루하루를 / 최선을 다하며 살겠습니다//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삶이 아름다웠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기쁘게 대답할 수 있도록/ 내 삶의 날들을 기쁨으로/ 아름답게 가꾸어 가야겠습니다//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어떤 열매를 얼마만큼/ 맺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도록/ 내 마음 밭에 좋은 생각의 씨를 뿌려 놓아/ 좋은 말과 좋은 행동의 열매를/ 부지런히 키워야 하겠습니다'

아! 가을, 내 인생에도 다가오는 가을 속에서 내 마음이 익는 고운 빛깔을 보고 싶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