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뒤 그곳은
무대 뒤 그곳은
  • 강석범 충북예술고 교감
  • 승인 2021.09.2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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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강석범 충북예술고 교감
강석범 충북예술고 교감

 

19세기 인상파 대표 화가 중 한 명인 `드가'는 발레리나를 잘 그렸던 유명한 화가입니다. 특히 화려한 조명과 무대 위 멋진 춤솜씨를 뽐내는 춤꾼들뿐만 아니고, 무대 뒤 긴장감, 또는 느긋하게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하품하는 모습 등 무대 뒤편에서 펼쳐지는 인간적인 춤꾼들의 모습도 많이 그렸습니다. 일반인들은 쉽게 들여다볼 수 없는 미지의 공간이기도 하지요.

나는 얼마 전 이러한 미지의 공간을 직접 체험했습니다. 충북교육문화원 대공연장 연주회에서 교육사랑합창단 일원으로 생애 처음 무대 조명 아래서 노래를 했습니다. 긴장감은 숨도 못 쉴 지경이었고, 그저 머릿속을 조명처럼 하얗게 태워버렸습니다.

무대 오르기 1시간 전, 공연장 옆 쪽문을 따라 미로 같은 계단을 한참 돌고 돌아 분장실을 찾았습니다. 그리 크진 않지만, 살짝 앞으로 기울어진 거울들이 한 줄로 쫙 펼쳐져 출연진들이 각자 의자에 앉아 멋진 분장을 하는 곳입니다. 안쪽에는 간단히 씻을 수 있는 공간도 갖춰져 있는 것으로 보였고, 벌써 무대 의상으로 갈아입은 김 선생님은 연신 호흡을 가다듬으며 목을 풀고 있습니다. “아~~ 오~ 컥컥 와우~~” 입을 오므렸다 폈다 눈까지 깜빡이며 마치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우듯 자신만의 루틴에 집중합니다. 나는 의자에 걸터앉아 어색함을 감추고, 내 나이 또래인 조 선생님과 구시렁구시렁 공연과는 전혀 상관없는 대화를 이어갑니다. “조 선생님! 그동안 연주경력답게 연주복이 정말 잘 어울리십니다.” “에이~ 무슨 소립니까~ 강 선생님 외모야말로 음악가 포스가 나오는데요?” 하하하 나와 조 선생님은 둘이 주거니 받거니 세상 사는 이야기로 너스레를 떱니다. 갑자기 조 선생님이 심호흡하고 한 말씀 하십니다. “마지막 연주라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해지네요? 내년 2월 명퇴하거든요. 퇴직하면 트로트 가수로 데뷔하려 합니다.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었던 거 한번 해보려고요.” 사립학교에 근무하시는 조 선생님은 일상 대화에서도 Bass의 굵직한 목소리로 주변 공기를 울릴 만큼 멋진 목소리를 갖고 계십니다. 옆에서는 우리 단원 핵심 캐릭터인 우 선생님이 살짝 나온 아랫배를 검정 커머번드(허리띠)로 단단히 고정하고, 거울 앞에서 한창 단장하고 계십니다. “옷이 날개라고~ 이렇게 입으니 나도 좀 봐줄 만하쥬?” 우 선생님은 거울을 보며 진심 흐뭇해하십니다.

잠시 후 남성 단원들이 검은색 연주복을 입고 펭귄처럼 우르르 동굴 같은 계단 위로 올라갑니다. 무대 옆 대기실에서는, 이미 여성 단원들이 금빛 찬란한 원피스를 입고 한 무리의 인어공주 포즈로 연신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날씨가 그리 춥지 않은데 소프라노 안 선생님은 카디건을 걸치고 계십니다 “선생님 추워요?” “아니요~ 팔뚝 가리려고요~~.” 대기실의 어수선한 분위기는 지휘자의 준비 신호로 갑자기 긴장합니다. 앞사람이 겨우 보일 만큼 어두운 무대 뒤편으로 모여든 단원들. 사회자는 벌써 무대 위로 나가 진행을 시작합니다.

자신의 자리를 찾는 단원들 사이에서 최 선생님은 저만치 더 어둠으로 들어가 계속 발성을 가다듬고 계십니다. 그 상황에서도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장난치는 여성 단원들의 드레스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도 순간 금빛을 반짝입니다.

드디어 커튼이 열리고 무대 위로 나아갑니다.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끌고 맨 뒷줄 가장 높은 곳에 자리를 잡습니다. 휘영청 밝은 조명으로 나는 이미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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